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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타고 2시간, 섬마을 면사무소서 재판 연 판사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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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신의도 신의면사무소에서 ‘찾아가는 법정’이 열렸다. 재판부는 소송이 제기된 염전을 둘러본 뒤 이날 재판을 열었다. [프리랜서 오종찬]

지난 3일 오후 4시 전남 신안군 신의도의 신의면사무소 회의실.

 면사무소의 책상 등으로 법정처럼 재판장석·변호인석 등을 놓았고, 방청석에는 마을 주민 40여 명이 앉아 목포에서 뱃길로 두 시간가량 걸리는 섬에서 처음 열리는 재판을 지켜보았다. 변호인석에 앉은 주민 2명은 염전 경계의 땅 75㎡에 대해 서로 소유권을 주장했다. 광주지법 관내에서 본안사건으로서는 첫 ‘찾아가는 법정’이 열린 것이다.

 심문을 마친 유상호(광주지법 목포지원 민사5단독) 판사는 “현장을 둘러보고 원고와 피고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민사소송보다는 법원의 분쟁조정을 이용하는 쪽이 보다 원만하게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원고 측에서 분쟁조정을 검토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방청객들에게는 “수십 년간 함께 산 두 이웃이 갈등을 해소할 수 있도록 곁에서 주민들이 도와주라”고 당부했다.

 유 판사와 재판부 계장, 실무관, 법정 경위, 전산요원 등 5명은 이날 오전 10시 목포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신의도에 갔다. 이들은 먼저 “이웃 염전에 편입된 내 땅을 돌려받게 해달라”는 내용의 민사소송이 제기된 염전을 방문했다. 소송의 쟁점인 염전의 경계와 이용 상황 등을 확인하고 이웃 주민들의 의견도 들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오후에 면사무소 회의실에서 심문을 진행했다.

 현장 검증과 재판을 지켜본 주민 박성춘(51)씨는 “판사가 직접 섬까지 와 현장을 살펴보고 주민들의 말을 귀담아 듣는 모습을 보니 재판에 믿음이 간다”고 말했다.

 ‘찾아가는 법정’이 현장 검증뿐 아니라 증인 심문이나 파산 선고 등까지 확대되고 있다. 섬이나 두메가 많은 전남 지역의 주민들은 재판으로 인한 불편이 줄어 반기고 있다.

 광주지법 파산부는 주민들의 법원 방문에 따른 불편을 줄여주기 위해 올 들어 매월 한두 차례 섬이나 지역을 돌며 재판을 하고 있다. 지난 2월 5일에는 파산48단독 한지형 판사가 신안군 안좌도에 가 면사무소에서 15건의 개인 파산 사건의 재판을 진행했다. 파산 신청인 대부분이 태풍 때 양식장에 피해를 보거나 특용작물 등을 재배하다 빚을 진 안좌·흑산·도초·우이·비금도 등 섬의 농어민이었다. 개인파산을 신청한 김모(65)씨는 “광주에 있는 법원까지 가려면 하루가 꼬박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드는데, 가까운 섬에서 편하게 재판을 받았다”고 말했다. 개인 파산 신청은 광주·전남에서 발생한 사건 전체를 광주지법 파산부에서 전담하며, 그동안은 광주지법 본원에 출석해야 했다.

 광주지법 파산부는 올 들어 안좌도 외에도 관내 지원을 찾아 다니며 일곱 차례의 이동 법정을 열었다. 해남지원에서 지난 1, 3, 4, 5월 파산 신청인들을 불러 심리를 했다. 목포지원에서는 3월과 5월 이동 법정을 연 데 이어 다음 달 8일 또 관내 주민들에 대한 재판을 한다.

 한지형 광주지법 공보판사는 “파산부가 ‘찾아가는 법정’을 토대로 140여 건의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고 말했다.

 서울고법 민사8부는 지난해 11월 전남 고흥에 가 심리를 했다. 지역 어민들이 2007년 방조제 건설로 피해를 봤다며 국가와 고흥군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사건의 현장 상황을 알기 위해서였다. 지난 4월에는 대법관 4명이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생긴 토지의 행정 관할권을 가리기 위해 새만금 현장을 방문했다.

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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