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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문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온 세계 작가들의 동경의 표적인「노벨」 문학상의 불꽃이 우리지척의 거리에까지 비화되었다. 이에 따라 아직까지는 안개 속 갈던 우리의 욕망이 어떤 형태를 갖추면서 가슴이 부풀어오르는 듯함을 느끼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에서 만일까?
물론 우리의 경우와 일본의 경우는 그 정치적·문화적 배경이 퍽 다른 것은 사실이다.
특히 요새는「노벨」상도 다분히 정치적인 고려를 하는 듯 하니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그 상이 우리 한국으로 오지 않고 일본으로 갔다는 것도 역시『정치적인 배려』에서일까? 한국의 작가들 중에는 충심으로 아니면 은근히 그렇게 믿고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을 나는 확신한다.
가령 몇 해 전에 황순원씨의「소나기」가 영국의「인카운터」 지의 현상모집에 당선이 되지 않았느냐. 문제는 우리도 일본의 작품들처럼 훌륭한 번역가만 만나면…오직 이것만이 남은 과제라고 생각하는 작가들도 많이 있음을 안다.
몇해 전에「순교자」를 발표하여 그것이 열 몇 나라말로 번역이 되었느니 몇 10만부가 팔렸느니 하며 거의 온 세계가 떠들썩한 적이 있다. 그때 문단의 일부에서는 그것이『우연히도』 영어로 쓰여졌다는 사실만을 중시하였다. 훌륭한 번역이 나와서 외국사람들에게 읽힐 기회만 주어진다면 국내에도 그 정도의 작품은 얼마든지 있다고….
물론 우리의 문학도 무엇보다 훌륭한 번역가에 의해서 적어도 일본작품들 만큼만이라도 번역이 되어야 한다. 번역이 안 되고는 애당초 이야기가 안됨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번의 천단씨의 수상작품「설국」은 적어도 영·불·독어로 번역되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도 그러한 훌륭한 번역가가 없다. 물론 이상적인 번역가는 번역될 언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이라야 한다.
그것은 생활감점, 언어구조를「번역」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따져서 번역란이 재창조인 것이다.「유네스코」에서도 영어 또는 기타 언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은 사람의 번역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러한 이상적인 번역가를 얻는 길은 무엇일까? 우리의 현실로는 이 문제를 국책으로 다루지 않으면 안된다.
즉 우리 지도자들이「올림픽」경기에 쏟는 노력의 10분의 1만 이라도 이 분야에 관심을 을 가져 달라는 것이다.
다음에는 우리작가들이 좀더 세계의 그리고 역사의 호흡을 감득해야 할 걸로 안다.
세계의 양식 있는 사람들의 누구나, 무어라고 형언할 수 는 없지만 「카오스」처럼 느끼고 있는 그 무엇을 우리만이 놓치고 있음은 거의 확실하다. 「아톰」과도 같은 극미량의 그 무엇의 결여가 세계인에게 호소하는 우리의 힘을 운반, 전달해주지를 못하고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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