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폭설 속의 초긴장 사이공5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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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 서 단폭결의알려>

<16일>68년10월16일 아침 7시45분(사이공시간). 「벙커」주월미대사의 검은 NG(외교넘버) 차가 새벽의 고요에서 막 잠을 깨려는 「웬주」거리를 달려 독립궁으로 소리 없이 들어간다.
전면 단폭에 따른 「존슨」미대통령의 견해를 월남정부에 공식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이 순간부터 「사이공」에는 폭발점을 못 찾고 억제된 긴장감이 떠돌기 시작했다. 이 억제된 긴장감은 46년부터 시작된 「프랑스」와의 「인도차이나」전쟁 이후 24년간이나 계속된 월남의 전쟁이 과연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느냐는 의문에서보다 단폭에 따른 「사이공」정부의 태도가 어떻게 될 것이냐는 구체적인 불안 때문에 결정적인 한곳의 폭발점을 못찾고 억제되어 정부와 시민 그리고 우방 외국인에게 확대되어가고 있다.
상오11시. 「벙커」미대사는 또다시 제2차로 「티우」대통령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월남정부는 「벙커」대사에게 정부의 공식입장을 전달했다.
정부의 공식입장에는 NLF대표를 평화협상 본회담에 참석토록 인정할 수 없다는 강력한 결의가 포함되어 있었다. 「벙커」미대사는 월남 정부의 공식입장을 즉시 「워싱턴」에 보고했다.
이날 저녁 제3차 「티우」·「벙커」회담이 열렸다. 이 회담에서는 월남정부가 평화협상 본회의에 정식대표로 참석해야한다는 월남정부의 조건을 미국정부가 수락한다는 뜻이 전달되었다.
이날하오 「사이공」정부의 표정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체념적인 상태였으며 허탈감과 앞으로의 해결을 위해 당황해하는 표정이 짙게 느껴졌다.
한편 정부주변에는 단폭을 계기로 망명생활에서 돌아온 「두옹·반·민」이 입각할 것이라는 개각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전투소강 의미 진단>

<17일>17일 아침 주월미군 사령부의 군사작전 보도는 단1건의 적과의 접촉도 없다고 발표했다. 「업저버」들은 이러한 사태가 일련의 평화의 움직임에 대해 적의 답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고까지 전망했다.
하오8시30분. 「벙커]미대사는 「티우」대통령과 1시간동안 요담했다.
「사이공」미공보관 부관장「매컨」씨는 「티우」-「벙커」회담이 있었음을 시인했으나 회담내용은 밝히기를 거부했다.
이곳 「업저버」들은 「워싱턴」당국이 만약 극적 단폭 선언을 한다면 「하노이」가 평화모색을 위한 긍정적 태도로 나올 것인가를 예의 검토 중에 있다고 전망했다.

<단폭거부 공식천명>

<18일>상오 월남정부는 『전면단폭이 월남에 이득이 되지 않는한 찬성하지 않겠다』고 공식으로 밝혔다.
14시. 주월한국군 사령부는 「사이공」근교 「디안」에 있는 비둘기부대에서 4·4분기 주요지휘관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단폭과 휴전에 따른 한국군의 전략이 모색.검토되었다.
채명신사령관은 앞으로 한국군은 대민 심리전에 치중, 건설지원과 진로를 중심으로 한 대민사업을 보다 크게 벌일 것을 강조했다.
하오. 지난9월말부터 「베트콩」과 월맹군이 이미 월남으로부터 철수를 시작했다는 외신보도가 나왔다. 월맹군304사단·308사단·320사단이 비무장지대를 통해 철수했으며 「사이공과 「캄보디아」 국경사이에 있던 5사단·7사단·9사단은 「캄보디아」국경을 넘어서 철수했다는 것이다. 「업저버」들은 이러한 적 병력의 철수를 긍정적인 태도로 받아들이는 편이 있는가하면 미군의 평화협상에로의 「무드」조성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신 한국대사와 회담>

<19일>새벽2시반. 「베트콩」은 「붕타우」에서 7마일 떨어진 지점에 「로키트」를 퍼부었다.
이 「로키트」공격은 「티우」대통령이 「붕타우」혁명개발「센터」에서 4개 군단장 긴급회의를 소집하기 불과 10여시간 전에 일어난 적의 포격이었다. 이 포격으로 5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19명이 부상했다.
상오9시 「티우」대통령은 「봉타우」에서 4개 군단장을 비롯 「비엔」참모총장 등 고위장성들과 긴급회의를 가졌다
회의를 마친 「티우」대통령은 월맹과의 직접협상을 강조하고 「민족해방전선」은 결코 회담의 장대로서 간주하지 않겠다』는 종전의 태도를 되풀이했다.
그러나 「티우」대통령은 『「하노이」대표 속에 민족해방전선 요원이 포함되는 것은 반대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하오3시 신상철주월한국대사는 월남외무부장관과 1시간에 걸친 요담을 가졌다. 이날 요담에서 외무부장관은 신대사에게 월남정부의 입장을 한국정부가 같이해, 도와줄 것을 당부했으며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박대통령과 「홀리오크」「뉴질랜드」수상과의 정상회담에서 월남의 입장을 도와줄 것을 부탁한 것으로 알려져졌다.

<시민들 평화를 고대>

<20일>19일 밤부터 계속된 비가 하루종일 내리고 있었다. 상가는 한국의 장마철 같은 비를 무릅쓰고 문을 열어 일요일의 손님을 맞이했으며 시민들은 조용히 단폭의 긴장감을 제나름대로 느끼고 있는 듯 했다. 「레로이」거리에 있는 한「오토바이」수리공은 『전쟁은 지긋지긋하다』고 말하면서 「평화가 빨리 와야한다』고 두 손까지 모아 보였으나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하노이」정부와 「사이공」정부의 태도에 대해서는 아랑곳도 해 보이지 않았다.
이날 상오 관영통신은 『연립정부는 불명예로운 항복의 길』이라는 반공논문을 보도했다.
또한 월남정부도 단폭설이 나돈 이후 매일 계속 NLF의 인정문제에 최대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불인정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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