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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일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지난 9월초순 북괴의 초청으로 약3주간 북녘을 방문했던 일본의 삼대신문인 아사히(조일)·마이니찌(매일)·요미우리(독매)의 암수홍(암수홍)·지위소지(지위소지)·반총전목(반총전)특파원들은 한결같이 『북괴는 김일성을 신격화하고있으며 북녘전역은 군국일색으로 도전적인 긴장된 분위기를 자아내고있다』고 보도했다. 일본기자들 눈에 비친 북녘지역은 「김일성의 땅」이며 『거리나 건물이나 심지어 열차에까지 김일성의 초상화가 안걸린데가 없고 소위 인민학교(4년제국민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김일성 사상학습이 필수과목으로 들어있다』는 것이다. 일본기자들이 『본대로, 들은대로, 느낀대로』적은 북녘의 생태와 그곳주민들의 생활상을 옮겨본다.
북녘에서는 김일성의 신격화, 김일성가족의 신격화바람이 세차게 불고있다.
모택동이 모택동 어록으로 국민을 속였듯이 김일성도 소위 인민학교에서 대학까지 김일성의가계를 정규과목으로 가르치도록 강요하고 있다 (마이니찌).

<어머니는「국모」>
김일성은 자신은 말할것도 없이 어머니 강반석마저 「국모」라 부르도록 강요하고 있으며 형제까지 소위 「혁명영웅」으로 부르게 하고있다(요미우리). 개인숭배에 있어서는 죽은 「스탈린」이나 모택동을 훨씬 능가(아사히)하고 있는 것이다.
8, 9살짜리 어린이들이 배우는 김일성의 가계는 이른바 성가족이다. 평양교외의 어느 중학교에서는 김일성이 이학교를 돌아봤을 때 걸터앉았던 의자, 그가 피우다가 버린 담배꽁초를 유리상자에 넣어 소중하게 모시는 한심스러울 정도로 철저한 신격화(요미우리)룰 이룩하고 있고 따라서 김일성의 말한마디는 비판의 여지없는 신성하고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와같은 철저한 김일성 개인의 신격화로 역사마저 왜곡되게 꾸며지고있다.
폭탄이 떨어져도 「김일성 아버지」가 보호해준다는 맹랑한 선전이 신격화의 촉진제로 마구 뿌려지고 있는것이다.

<허무맹랑한 선전>
북녘노동자들은 밤낮노동을 강요당하면서도 북괴화폐로 겨우 월평균50원∼80원(일화환산 7천엔∼1만1천2백엔)의 임금밖에 받지 못한다. 중학교 교장이라야 고작 1백30원정도다.
이 돈으로는 최저생활을 꾸려나가기에도 힘에 겹다. 그네들이 말하는 「소비물자」란 노동자들에겐 그림의 떡. 손목시계 하나를 사자면 먹지않고 입지않고 반년을 벌어야한다.
평양거리의 상점(모두가 국영이다)에 게시된 가격표를 보면 손목시계가 3백30원, 자봉틀이3백50원, 「오르간」이 4백원이다(마이니찌·요미우리).

<비누세수는 사치>
우리의 상식으로 세숫비누는 생활필수품일텐데 보통것 하나가 1원40전까지했다(마아니찌).
비싼것중에서도 비싼 것은 화장품이었다. 놀라 자빠질 정도였다(마이니찌).
북괴는 북녘사람들에제 『세상에 부러울것없다』는 노래를강요하고 있는데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아무것도부러워않겠습니다. 전쟁(태평양전쟁)을이길때까지는-』하던 일본의 전시표어가 연상됐다(요미우리).
북녘 노동자의 생활은 한마디로 비참한것이다. 북괴는 물자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사치와 낭비를 극력 억제한다』는 구호를 내걸어 국민을 속이고있는것이다(마이니찌).

<빈틈없는 감시망>
평양시내의 상점에서 생활필수품이 넉넉하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었다(요미우리).
평양교외의 고아원과 탁아소에 맡겨진 어린이들은 점심에 빵한조각을 얻어먹을때도 『김일성 아버지 감사합니다』를 외어야 얻어먹을 수 있다. 이말을 못하면 이말을 할 때까지 빵을 먹지 못한다.
북녘사람들의 생활은 빈틈없는 감시의 거미줄에얽혀 한시도 마음을 놓을수 없으며 긴장을 풀 여유가 없다.
고된하루의 일이 끝나도 휴식의 시간은없다. 휴전선에서 「미군도발」이 잦다는 허위선전을 내세워 항상군사훈련과 사상교육을 실시(요미우리)하여 숨을돌리고, 다른 생각을할여유를주지않는다.

<역겨운 사상교육>
북녘에서는 특히 부인의 노동력을 완전착취하기위해서 각처에 탁아소를 꾸미고있으며 이에따라 어떤중공업공장은 22%의 부인노동자, 모공장은 33%의 노동력을 여성들로 채워(마아니찌)가정생활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드러내고있다.
가정에 돌아가면 그들이 으리으리하다고 자랑할 가구는 별것 아닌 「라디오」와 자봉틀인데(요미우리) 그나마 「라디오」는 북괴방송이외의방송은 들을수없도록「다이얼」이 고정되고 원거리는 들을수없는 4구이하의것이다.
그리고 노된 노동과 지리한 사상교양을받고 밤늦게 돌아가면 겉은 훤하지만 절전을 이유로 전기불은 희미하고 환기장치가없는 「아파트」에 일에지친아내의 곯아잠든 모습을보는것이 고작이다.

<직공33%는 여자>
이번 북괴에 초청된 일본특파원들은 용공색채가있는 기자로 알려졌는데 이들의 눈에 비친 북녘의 실태가 이정도라면 그실정은 가히 짐작이 간다.
마이니찌(每日)신문의 지위소지(志位素之)특파원은 그의북녘견문기를 다음과같이 매듭지었다.
『귀국도중 「시베리아」어느 마을의 식당에 들렀다. 무엇보다도 「튀스트」를 추는 「미니·스커트」와 멋쟁이 남녀에 시선이 갔다. 정말 별천지처럼 느껴졌다. 어느 소련사람에게 평양이야기를 했더니 그는 선뜻 이렇게 말했다.

<별천지 시베리아>
「우리들도 한때 그런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생활의 다양화 요구를 결코 억누를수는 없을겁니다. 곧 그곳(북녘)에도 이러한 시대가 오겠지요」
그러나 그곳(북괴정권이 지배하는지역)에 이런 세계가 있을것이라고는암만해도 생각되지않았다는것이 본기자의 숨김없는 감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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