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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천단강성)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1899년 오사카(대판)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가와바타 야스나리(천단강성)씨는 2살때 아버지를, 3살때 어머니를 여의고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으나 16살되던해에는 할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 소년시절을 참담한 고독과 좌절감속에서 보냈다.
이같은 어린시절의 어두운 기억은 자전적 소설「16세소년의 일기」에 잘나타나있다.
일고를 거쳐 20살때 동경대 학국문과에 입학, 평소 관심을 갖고있던 일본고전문학및 단시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며 아울러 서양문학에도 깊은 관심을 쏟았다.
그는 이때 일고시절의 여행담인 젊은 고교생과 무희간의 사랑을 그린「이즈의 무희」를 발표, 문단에「데뷔」했다. 동대에 재학중인 1921년 그는 문우와 같이 제6차「신사조」를 창간, 이 잡지에 실린 단편「초혼제일경(초혼제일경)」이 기구치(국지관)에 인정받아「문예춘추」의 동인이 되었고 요꼬미쯔(횡광이일)와 사귀게되었다.
그는 오꼬미쯔(횡광)와 함께 l924년「문예시대」를 창간하여 신감각파로서 눈부신 활동을 시작하였다.
20대후기에서 30대초기의 10년간을 그는 모든 작가가 그러했듯이 불우한 나날을 보냈으나 「문예춘추」「문예」「중앙공론」등에 계속 작품을 발표했다.
「춘경치」「천초홍전」(1929∼30)「서정가」(32)「금수」등은 이때의 작품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설국」(1935∼37)은 30대후반에 연작형태로 완성한 것이다. 이 작품은 서양문학에 관한 번역을 하는 이외에 별로하는 일이 없는 중년의 주인공이 설향의「게이샤」와 친해지면서 그녀의 청순한 정열에 감동하지만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애정의「슬픈 아름다움」을 묘사한 것이다. 즉 출세작「이즈의 무희」이래의 주제를 전개한 작품으로 높이 평가된다.
이때를 전후하여 그는 신심리주의의 수법을 배워「의식의 흐름」을 추구한「수정환상」(1931)같은 작품도 발표했다.
이 작가는 항상 연약하고 어두운 그늘 속의 생명력이 하나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아름다움을 응시하고있다. 패전후 멸망해가는 일본의 미에 더욱 탐닉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하는 가와바타(천단)씨는「천마리의 종이학(천우학)」(1949∼51)「산의소리」(1949∼53)등에서 이같은 분위기를 더욱 깊고 미묘하게 전개하고있다. 이어 그는「잠자는 미녀」(매일출판문화상 수상)「옛도시(고도)」(62)등을 발표, 일본문화인의 최고영예인 문화훈장을 받았으며 최근에는 평화운동에도 열을 올려 북폭중지를 주장, 소련「체코」침략을 비난했다.
문예시평가로도 탁월한 재능을 보이고있는 가와바타(천단)문학의 특징은 한마디로 애감어린 일본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또 추구하는 데 있다. 그는 일본의 고전「겐지이야기(원씨물어)」의 현대역에 전념, 내년 2월에는「하와이」대학에서 강의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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