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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4시간만 근무해’… SKT의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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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30개월 된 딸아이를 둔 워킹맘 이은주(33·광주광역시 신안동)씨는 지난주 모처럼 주말다운 주말을 보냈다. 한 주 내내 아이의 어린이집 등·하굣길을 함께 하고, 집에서 세 가족이 주말을 보냈으며, 일요일 밤에는 불안해하는 딸을 안아주며 말했다. “괜찮아, 엄마 어디 안 가. 내일도 같이 어린이집 가자.”

 첫 아이를 낳고 복직한 뒤 1년3개월, 이씨의 한 주는 ‘눈물의 월요일’로 시작해 ‘피로의 일요일’로 끝나곤 했다. 이씨는 SK텔레콤 광주 서부고객센터에서 근무하는 6년차 전화 상담사이자 맞벌이 주부다. 지난달까지는 딸을 순천의 친정 부모님댁에 맡기고 자신은 광주광역시에서 직장생활을 해 왔다. 오전 9시 출근에 오후 6시30분 퇴근이고 야근도 없는 직장인데도 오전 9시가 넘어야 개원하고 오후 서너 시면 아이를 찾아가야 하는 인근 어린이집에는 아이를 맡길 수가 없었다. 매주 금요일 저녁 지친 몸을 이끌고 순천에 가서 아이를 만나고 일요일 밤이나 월요일 새벽에는 아이와 마음 아픈 이별을 해야 했다. 아이가 엄마와 헤어지기 싫다며 울 때는 이씨도 눈물을 훔치며 돌아섰다.

급여는 절반, 4대보험·승진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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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자로 이씨의 ‘주말 가족’ 생활은 끝났다. 아침에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려다 주고 여유 있게 오전 11시30분까지 출근하고, 오후 3시30분에 업무를 끝내고 어린이집에 들러서 아이를 찾아 함께 집에 돌아온다. 다니던 직장은 그대로, 정규직 신분도 그대로다. 일하는 시간만 하루 4시간으로 줄었다. 급여는 이전의 60%이며 인센티브나 수당까지 포함해 계산하면 이전의 절반 정도를 받게 된다. 이씨는 “아이와 떨어져 있을 때 들어가던 비용이나 스트레스를 감안하면 만족스러운 수준”이라며 “아이가 좀 더 클 때까지 1~2년간은 이렇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여성 근로자를 위한 시간제 정규직이 신설됐다. SK텔레콤이 고객센터를 운영하는 자회사 서비스에이스와 서비스탑에 이달부터 시작한 새 근무 형태다. 대기업에서 기존 정규직이 단축 근무를 한 경우는 있지만 4시간 근무 조건으로 정규직을 채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하루 4시간만 일하는 상담사 직군으로, 지위는 정규직이며 4대 보험과 승진 기회도 주어진다. 전 직원의 90% 이상이 여성인 고객센터를 배려해 도입한 제도다. 신규 채용 인원은 총 180명. 선발 1순위는 결혼·출산·양육으로 퇴사한 전 직원이며, 2순위는 이러한 이유로 경력이 단절된 주부다. 현재 전일제로 근무하는 직원이 시간제로 전환하는 것과 이후 다시 전일제로 복귀하는 것 모두 가능하며, 시간제로 일한 기간도 근무 연수에 포함된다.

퇴직자 1순위 … 기존 직원도 가능

 회사는 워킹맘의 줄어든 업무량을 다른 이에게 떠넘기는 식이 아니라 신규 채용으로 인력 자체를 늘리는 쪽을 택했다. 직장 내 갈등 소지를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다. 김경원 구로고객센터장은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라 전화가 폭주해 상담사들의 스트레스가 많아지는 시간대인 오전 11시30분에서 오후 2시 사이에 투입하는 시간제 인력을 확충한 것”이라며 “업무량이 분산되고 교대로 쉴 수도 있어 기존 직원들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당장은 회사 측의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얻는 것이 많다는 설명이다. 방성제 SKT 고객중심경영실장은 “불만을 가진 고객도 설득할 수 있는 베테랑 직원 한 명을 육성하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한데, 이런 직원이 퇴사하면 회사로서도 손해”라 고 말했다.

 국내 여성취업자 수는 꾸준히 증가해 2011년 1000만 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도 2011년 190만 명, 지난해 197만 명으로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이들의 경력 단절 이유는 결혼(46.9%), 육아(24.9%), 임신·출산(24.2%), 자녀교육(4.0%) 순으로 절반 이상이 양육과 관련돼 있다. 정부가 4일 정규직 근로시간을 줄이고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는 ‘고용률 70% 로드맵’을 발표하며 워킹맘을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들, 워킹맘 탄력 근무제 확산

 기업들도 점차 변하는 추세다. 임원의 10% 이상이 여성인 KT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의 필수근무 시간대 외에는 근무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정하고, 꼭 회사로 출근하지 않아도 인터넷 환경과 스마트 기기를 이용해 스마트워킹센터나 집에서 근무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전체 직원의 63%가 여성인 아모레퍼시픽은 여성 직원의 육아 편의를 위해 출퇴근 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ABC 워킹 타임’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만 6세 미만 자녀를 둔 임직원이 근로시간을 주 15~30시간으로 줄일 수 있는 단축근무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자녀가 6세 이상이라도 등·하교 시간에 맞춰 출퇴근 시간을 조정할 수 있게 한다. 이마트는 임신한 여성 직원의 근무시간을 출산 때까지 매일 1시간씩 단축하는 제도를 올 2월 도입했다.

심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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