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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 송수남 화백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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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우리는 모두 행복한 꽃’이라던 꽃의 화가 남천 송수남 화백. [중앙포토]

여느 빈소와는 달랐다. 9일 서울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7호실. 활짝 웃는 영정 사진 앞엔 흰 국화 대신 색색의 온갖 꽃이 가득했다. “내 장례식엔 모두가 화사한 복장으로 꽃을 들고, 생전의 좋은 추억을 떠올리며 참석했으면 좋겠다”는 고인의 유언이 있어서다. ‘꽃의 화가’ 남천(南天) 송수남 화백이 8일 별세했다. 75세. 고인은 급성 폐렴으로 지난 2주간 입원치료를 받다가 이날 영면했다. 그는 1970년대 ‘현대 수묵화 운동’을 주도한 한국화가다. 상업주의·복고주의·권위주의를 배격하며 새로운 한국화 정립을 기치로 내세운 운동이다.

 1938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홍익대 서양화과에 입학했다가 4학년 때 동양화과로 옮겼다. 스웨덴 국립동양박물관 초대전을 비롯, 30여 차례 개인전을 가졌다. 상파울루 비엔날레, 타이페이 국제현대수묵화전 등에도 참여했다. 1975년부터 2004년까지 모교인 홍익대 동양화과 교수로 재직했고, 홍익대 박물관장, 서울미술대전 운영위원, 중앙미술대전 심사위원 등을 지냈다.

 수묵의 현대적 조형성 정립을 모색한 고인은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한국화를 그리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가 한지에 먹물이 스며드는 때다. 그때의 묵향이 참 그윽하다. 한지에 서서히 번지며 스며들어가는 먹물처럼 세상과 내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조화이며 거스름없는 삶이다.”

 2003년 이후 아크릴이나 유화로 화사한 꽃그림을 그렸다. ‘시장의 꽃그림 유행에 편승한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고인은 “사람도 변하고 이념도 변하지만 자연은 그대로”라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한 꽃이다』(2009)라는 그림 에세이집을 출간, “오늘이 우리 삶의 절정이다. 보이지 않는 내일이 아니라, 지금 살아 숨쉬고 있는 오늘”이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발인 10일 오전 5시. 장지는 천안공원.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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