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영의 문화 트렌드] 광주비엔날레 닮은꼴인데 한국 작가는 안 보이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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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호 28면

“2010년 광주비엔날레 ‘만인보’와 꽤 비슷한데?”

제55회 베니스비엔날레

지난 6월 1일 개막한 제55회 베니스비엔날레 본(本)전시 ‘백과사전식 궁전’을 보면서, 한국 기자들을 비롯해 제8회 광주비엔날레를 봤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총감독이 바로 ‘만인보’를 기획했던 마시밀리아노 지오니라서 이상할 것은 없지만, 예상보다도 더 비슷하다.

귀여운 얼굴의 거대 봉제인형이 봉제 내장을 노출하고 있는, 유명 미국 작가 폴 매카시의 그로테스크란 작품은 3년 전 광주에서 봤던 것이다(사진). 중국의 독학 작가 궈펑이가 기공(氣功) 수련 중에 본 신화적 환영을 신들린 듯한 세밀한 선묘로 나타낸 드로잉도 마찬가지. 일본 작가 신로 오타케가 강박적으로 시각문화를 쓸어 모아 만든 스크랩북은 전시된 스타일마저 광주에서와 비슷하다.

올해 베니스 본전시에 참여하는 150여 명의 작가 중 4분의 1 정도가 2010년 광주와 겹친다. 겹치지 않는 작가들의 작품이나 발견된 사물도 비슷한 맥락과 스타일로 전시돼 있다.

이미지에 대한 인류학적인 접근, 본래 작품으로 의도되지 않은 기록사진이나 오브제를 참신한 맥락에서 현대미술작품과 함께 전시하는 것, 또 유명한 대가들과 무명 작가 혹은 독학 아마추어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적절한 테마로 함께 묶어 전시하는 것-이것이 지오니의 장기로서, 2010년 광주에서 국내외의 찬사를 불러일으켰고 올해 베니스에서 더 확장된 형태로 나타났다.

지오니는 영국의 예술매체 아트뉴스페이퍼와의 인터뷰에서 “이 전시가 광주에서 시작한 연구 프로젝트의 ‘제2권’이라고 생각한다”며 그 밀접한 연관성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광주에서 우리 현재의 특징으로서 ‘이미지’에 초점을 맞췄다면 (중략) ‘백과사전식 궁전’은 상상·꿈의 시각적 구현, 내면적 이미지군(image群)에 대한 전시다”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이렇게 “상상·꿈”과 “내면적 이미지”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백과사전식 궁전’은 좀 더 시각적으로 풍성한 반면, ‘만인보’가 지녔던 사회정치적 고찰과 활력은 부족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베니스에서 만난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뷔르템베르크 미술협회 대표 이리스 드레슬러는 “역동적인 전시라기보다 정지되고 하나의 맥락으로 정리된 거대하고 총체적인 박물관을 보는 느낌”이라면서, 100여 년 전 서구인들의 “식민시대적인 수집광 태도”가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백과사전식 궁전’ 에서 가장 아쉽고도 이상한 부분은 지오니 자신이 말한 것처럼 2010년 광주비엔날레에서부터 출발한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작가는 없다는 것이다. 비엔날레 국가관 전시에서는 김수자 작가가 한국관 전체를 ‘빛과 어둠을 아울러 바느질한 숨쉬는 보따리’로 탈바꿈시킨 전시를 선보이고 있지만, 본전시에는 한국 작가가 포함돼 있지 않다.

이에 대해 이번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관계자는 “지오니 감독과 잠시 말을 나누었을 때 그는 본전시에 한국 작가가 빠진 것에 대해 무척 미안해했다. 하지만 이유를 묻자 애매모호하게만 대답했다”고 전했다.

물론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 포함 여부는 작가의 작품성이나 명성보다도 전시의 컨셉트에 맞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비엔날레 본전시에 참여하는 것은 젊거나 아직 이름을 널리 알리지 못한 작가들에게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에 한국 작가들이 이번 전시에서 그 기회를 얻지 못한 것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본전시를 둘러본 이한신 아르코 미술관장은 “한국 작가가 하나도 안 들어간 것이 참 유감스럽다”면서 “지오니 감독은 작가 선택에 독특하고 일관된 생각이 있다. 한국 작가들은 스펙트럼이 넓으므로 그의 컨셉트에 부합하는 작가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컨셉트에 맞는 한국 작가를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한국 작가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10년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이었음에도 불구하고”라고 했다.

이것은 지오니 개인의 문제일까, 아니면 외국 큐레이터에게 한국 작가를 소개하는 시스템에 미비점이 있는 것일까.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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