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외 파생금융 거래 급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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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해 국내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정규시장 밖에서 사고 판 파생 금융상품 규모가 크게 늘었다.

경제가 불확실해지다 보니 투자위험을 줄이려는 노력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파생상품 거래는 대개 투자위험을 떠넘기는 대신 수수료를 지급하거나(위험회피 거래)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수수료를 챙기기(투기 거래) 위해 이뤄진다.

한국은행은 "파생상품 거래가 급증한 것은 경기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주가.금리가 하락하면서 위험회피와 투기 수요가 다같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9일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금융기관의 장외 파생 금융상품 거래 규모는 41억5천만달러로 전년(13억8천만달러)보다 3배나 불어났다. 건수로도 지난해 1백39건으로 전년(65건)보다 배 이상 늘었다.

◇갖가지 아이디어 상품도 속출=종류별로는 주식과 관련된 파생상품 거래 규모가 18억5천만달러, 79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는 전년보다 금액으로는 2.8배, 건수로는 두배로 늘어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대선 정국을 앞두고 증시 불안이 유난히 심해 주식거래 때 위험 분산을 위한 주식연계채권.옵션 등 투자를 늘렸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채권.대출의 부도위험을 주고 받는 신용 파생상품 거래 규모는 12억1천만달러, 55건으로 집계돼 전년보다 금액으로는 1.7배, 건수로는 2.2배 증가했다.

새 상품도 개발됐다. 환율 변동과 부도 위험을 동시에 주고 받는 복합 파생상품이 그것으로, 파생상품과 파생상품을 접목해 아주 복잡한 파생상품을 만들어냈다. 이 복합파생상품 거래 규모도 10억9천만달러, 5건에 달할 정도로 늘었다.

◇은행.보험사가 가장 많이 거래=은행과 보험사는 대표적인 신용 파생상품인 신용연계채권(CLN)을 중심으로 각각 5억5천만달러, 9억4천만달러어치의 파생상품을 거래한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이나 투자기금 등은 주식 관련 파생상품을 위주로 25억5천만달러어치를 거래했다.

한은 관계자는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가 단계적으로 풀리고 경기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어 파생상품 거래는 앞으로도 많이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는 "파생상품 거래가 활성화되면 기업.금융기관이 투자할 수 있는 대상이 다양해져 수익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다만 투기 거래는 자칫 잘못될 경우 원금의 몇배를 손해볼 수 있어 위험 관리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국의 베어링 은행은 한 직원이 거액의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실패해 단돈 1파운드에 팔리는 신세가 됐으며 국내에서도 SK증권이 미국 JP모건이 판 해외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대규모 손실을 보고 수년간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파생 금융상품이란=주식.채권.예금.외환 등 기초 금융상품을 토대로 투자효과를 높이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 각종 금융공학을 동원해 만들어 낸 첨단 금융상품을 일컫는다.

선물.옵션 거래나 은행의 양도성 예금증서(CD) 등 초기의 파생 금융상품에서 요즘은 파생상품과 파생상품을 결합한 복잡한 파생상품도 많다.

SK증권이 JP 모건에서 사들였던 토털리턴스왑(TRS)은 환율.채권 등을 복잡하게 결합해 투자자가 엄청난 손실을 볼 수도 있게 만들었지만 당시 SK 관계자들은 이를 모르고 투자했다가 훗날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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