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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여유를] 6. 게으름을 즐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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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게으르면서도 할 일을 다한 사람을 들라면 단연코 영국 총리였던 처칠이다. 그는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낮잠은 꼭 잤다고 한다. 독일군의 폭격으로 아무리 시끄러워도 개의치 않았다. 잠옷차림에 굵은 시가를 입에 문 채 국가의 기밀문서에 사인을 했다.

위스키는 하루에 한잔씩을 꼭 즐겼다. 그러고도 90세까지 살았다. 기자가 물었다. 그렇게 게으르고 담배도 많이 피는데 어떻게 오래 사느냐고. 처칠은 아주 간단히 대답했다. "운동을 하지 않기 때문일세". 이쯤 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우리는 어떤가. 어쩌다 여유가 있는 휴일, 낮잠을 자고 나면 기분이 그리 깔끔하지 않다. 운동이라도 할 걸 아까운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든다. 일주일에 한번인 나만의 휴일에 낮잠 잔 것이 무슨 큰 잘못이냐고 자위를 해보지만 불안한 마음은 여전히 남는다.

휴가나 연휴가 끝날 무렵이면 사람들은 더욱 조바심을 친다. 사소한 일에도 서로 짜증내며 싸우게 된다. 새로 시작되는 일상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휴일이 길면 길수록 우리의 두려움은 더 커진다.

즐겨야 할 여가시간에 왜 우리는 항상 불안해 하는 걸까. 무엇보다도 일터의 리듬을 잃어버리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일터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뒤처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놀러 갈 때도 휴대전화 충전기는 반드시 챙겨야 하고, 도착하면 호텔에서 인터넷이 가능한가를 먼저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일중독자는 일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일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일 뿐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일중독자일수록 자신이 일한 시간을 과대 평가한다. 일주일에 70시간을 일했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다이어리에 기록된 실제노동시간은 50시간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에 대해 생각한 시간, 즉 일 때문에 불안해 한 시간을 일한 시간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이런 일중독자들이 유포하는 전염병이 있다. 쉬면 불안해 지는 병이다. 이 병이야 말로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우리나라 40대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죽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병은 우리의 여가도 형편없이 망가뜨린다. 일하지 않아도 뭔가 부지런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신체를 단련하고 영어를 배운다. 휴가를 가서도 부지런히 쇼핑센터를 기웃거린다.가만히 있으면 불안하기 때문이다.

'쉬면 불안해지는 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또한 휴(休)테크의 기본이다. 걱정하지 말자. 내가 쉬는 사이 남들은 절대 앞서가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해오던 방식대로 똑같이 일할 뿐이다. 쉴 때는 게을러도 된다.

게으르게 쉬면서 일터의 리듬을 잃어버려야 한다. 타성에 젖은 일터의 리듬을 잃어버리기만 해도 우리는 저절로 창의적이 된다. 게으르고 싶어도 게으를 수 없는 이 뿌리깊은 집단적 노동강박증에서 헤어나와야 행복해질 수 있다.

김정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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