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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극회」단장 박현숙여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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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1년전 11회공연으로 막을 내렸던 제작극회가 연극중흥의 횃불을 드높이면서 다시 발족했다. 단장은 5남매의 어머니이며 희곡작가인 박현숙씨. 지난27일 호수「그릴」엔 연극의「올드·타이머」들에 낯익은 얼굴들이 모여 제작극회의 재기를 축복했다.
제작극회는 1948년 당시 연극의 선봉인 각 대학연극학도들이 제1의 대학연극경연대회를 계기로 뭉쳤던 단체. 고대의 김경옥·최창봉, 노희엽씨, 연대의 차범석씨, 서울대의 조동화·이두현씨와 중대의 박현숙씨가 동인이었다.
『신협과 더불어 제작극회는 연극계의 쌍벽이었죠. 연극의 알맹이를 옮겨줄 수 있는 소극장운동으로는 선구가 된 셈이고….』
시들어 가는 연극을 되살리자는 열의가 놀라운데다가 공직이 없어 어쩔수 없이 단장을 맡았다는 박여사는 재정난과 배우난으로 문을 닫았던 옛자국을 다시 밟지않겠다고 다짐한다.
『주주를 모으렵니다. 기금은 한 2백만원쯤 필요하고…. 지금 절반쯤은 마련되었습니다. 』
제작극회가 재기하여 발전할 묘방이 바로 주주제. 흐지부지된 「드라머·센터」의 회원제를 극복한 것이란다.
그가 『고생을 사서』다시 연극운동에 나선것은 연극에 중독된 탓만은 아니다.
요즘 각 극단이 금싸라기갈은 관객앞에서 너무나 수준낮은 연극을 보이잖나하는 울분이 더 크기때문이라고한다.
『연기자의 확보가 문제입니다. 내가 나서려도 몸이 불어서 왕비역이나 맞을는지….』
「햄릿」의 「오필리어」역으로 연기상을 받기도했던 세류같던 몸집이 두배는 뚱뚱해졌다고 유쾌한 농을 터뜨린다.
『신극 60년에 제작극회가 중흥의 불씨가 되었음합니다. 주주들에게 물질적인 배당은 못주더라도 정신적인 배당이나마 나누는게 유일한 소망입니다.』
오는11월에 재기의 첫 작품을 상연할 계획이지만 작품은 아직 미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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