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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소리·햇살·어둠 … 자궁처럼 관객 품은 한국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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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을 장식한 ‘호흡:보따리’전에서의 김수자 자화상. [사진 김수자 스튜디오]

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리는 카스텔로 자르디니. 이곳엔 이탈리아·벨기에·영국 등 26개국이 자국 전시관을 꾸리고 있다. 19세기 말 만국박람회 방식에서 유래한 국가별 전시, 베니스 비엔날레의 특징이다. 일종의 ‘미술 올림픽’이다.

 올해 자르디니의 화제는 독일과 프랑스의 ‘국가관 스와핑(교환)’. 수교 50주년을 맞은 두 나라의 아이디어 기획이다. 프랑스는 독일관 건물에서 알바니아계 프랑스 미디어 아티스트 앙리 살라의 음악에 관한 작업만으로 승부했다.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1930) 연주 영상을 가득 채웠다.

 독일은 중국의 아이웨이웨이(艾未未), 인도의 다이아니타 싱 등 타국 미술가 4명을 대표로 내세웠다. ‘미술 올림픽’ 승리를 위해 ‘이것은 미술 올림픽이 아니다’라는 대안적 메시지까지 내세우며 이슈를 선점하는 모양새였다.

 한국관(커미셔너 김승덕)은 ‘비우는 것’을 전략으로 택했다. 초여름의 햇살이 유리 건물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며 무지개를 그리는 빈 공간을 부각시켰다. 전시장 안팎을 반투명 필름으로 감쌌다. 건물 자체를 작품 삼아 빛을 끌어들이는 것, 이게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전의 역발상이다.

 안을 비우며 바깥 풍경도, 거울에 비친 관객 모습도 작품으로 끌어들였다. 스피커로는 나직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소리가 반복해 나왔다. 빛으로 가득한 공간을 체험한 뒤엔 이어 전시장 구석의 암실에서 완전한 어둠과 정적을 만나게 했다.

 한국관 자체를 자기 몸처럼 사용한 김수자(56)의 ‘호흡:보따리’다. 올해 한국관서 단독 전시를 연 김수자는 “빛도 어둠의 일부이며, 어둠 없이 빛은 존재할 수 없다. 어둠 속에서 자기 몸만 느끼다가 쏟아지는 빛 가운데 나와 다시 태어나는 느낌을 갖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베니스에 체류 중인 고은 시인은 “자기를 최대한 드러내려고 애쓰는 전시들 가운데, 엄마의 자궁 속처럼 관객을 품어주며 정화시킨 색다른 전시”라고 평했다.

 베니스 일대에서는 공식 부대행사 40여 개를 비롯한 각종 특별전이 열렸다. 산 안토닌 성당에는 아이웨이웨이가 구금 중인 자신의 모습을 순교자처럼 만들어 설치해 주목을 끌었고, 광동미술관에서는 1979년 이후의 중국 독립예술에 대한 대규모 전시를 여는 등 중국 미술의 공습이 거셌다.

 또 국립현대미술관은 베니스 중심가의 오랜 건물에서 한국미술을 알리는 ‘앨리스는 누구(Who is Alice?)’를 열었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의 비영리기관 큐레이터인 위르겐 타보르는 “최수앙의 손짓하는 포스터가 인상적이어서 찾아왔다. 유희적 작품이 많아 재미있었고, 다채로운 여러 물건을 모아 내건 양혜규의 작품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이밖에 호텔 아마데우스에서는 김기라·김도균·노순택 등 우리 미술가 16명이 루벤스의 그림 ‘한복 입은 남자’를 모티브로 한 전시를 11월 29일까지 연다. 서울 평창동 토탈미술관 신보슬 큐레이터의 기획이다.

베니스=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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