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산나물에 조선간장 양념장 싱그러운 ‘보약’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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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호 22면

1 자연산 생산나물로 만든 산채비빔밥. 향긋한 여러 산나물이 가득하다. 직접 담은 조선간장에 비벼 먹는다. 된장찌개를 몇 숟가락 넣어 같이 비비면 더 맛있다.

예부터 몸이 건강해지는 식생활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제철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몸은 계절과 자연의 변화에 맞춰서 반응하며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 계절에 나는 음식을 먹는 것이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것이고 우리 몸에 가장 좋은 것이다. 하늘과 땅과 인간은 하나의 기운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우리 선조의 천지인(天地人) 합일(合一) 사상, 신토불이(身土不二) 사상들이 이를 잘 설명해 준다.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17> ‘문경집’ 산채비빔밥

우리 땅에서 나오는 제철 음식 중 아주 소중한 것이 바로 봄철에 나오는 야생 산나물이다. 추운 겨울 동안 살아남아서 싹을 틔워 올리고 치열한 생존 경쟁 끝에 자라난 산야초(山野草)는 그 자체가 강인한 생명력의 결정체다. 이 산야초로 만든 산나물은 우리 몸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듬뿍 들어 있는 비타민과 무기질 영양분으로 노곤해지는 몸에 활력을 주는 완벽한 제철 음식이다.

봄이 막 떠나가고는 있지만 야생 산나물을 즐기기에는 아직 늦지 않았다. 비닐하우스나 밭에서 재배하는 것이 아니라 산에서 나오는 야생 산야초 나물은 4월부터 6월까지가 제철이기 때문에 지금도 한창이다.

2 20여 년 동안 메밀묵과 두부를 직접 만들어 온 김종대 사장의 손. 울퉁불퉁하고 휘어진 거친 손이지만 누구보다 정직하고 아름다운 손이다. 3 문경집 외관. 수수하고 평범하지만 단골들이 줄을 잇는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있는 ‘문경집’은 야생 산나물로 만드는 산채비빔밥을 제대로 하는 곳이다.

주인인 김종대(59) 사장이 해마다 봄철에 매주 경상북도 문경에 직접 내려가 구해오는 야생 산나물로 맛있는 비빔밥을 만들어 낸다. 취나물·참나물·영아자·어수리·곤드레·사향초·거름대·엄나무순 등등 여러 가지 향긋한 산나물들이 가득하다. 제철이 아닐 때는 냉동해 놓은 산나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산에서 바로 따온 싱싱한 생 산나물을 즐길 수 있는 것은 바로 지금이다.

문경집의 시작은 1992년이다.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실직하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김 사장은 고향 문경에서 작은 음식점을 하시던 어머니를 모셔 와 부인과 함께 세 식구가 ‘산골 메밀묵’이라는 작은 식당을 열었다. 어머니가 고향에서 만들던 메밀묵밥·안동국시·보리밥 등 향토 음식을 만들어 냈는데 이 소박한 음식들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으면서 식당이 차츰 자리를 잡아 나갔다.

고향 음식이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을 보고 그는 아예 문경 향토 음식으로 특화하기로 하고 상호를 ‘문경집’으로 바꿨다. 그리고 그때부터 모든 식자재를 문경에서 가져다 쓰기 시작했다. 각종 채소와 산나물·쌀·돼지고기를 모두 문경에서 가져오고, 심지어 고춧가루와 콩도 그곳에서 가져와 고추장·간장·된장을 직접 만들어 쓴다. “경상북도 문경은 중산간 지역이어서 일교차가 심해 채소의 향과 맛이 좋고, 청정지역이어서 좋은 식재료가 나는 곳”이라는 것이 김 사장의 고향 자랑이다.

문경집 음식의 특징은 모든 음식이 건강식이고 정성이 많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조미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주인 부부가 열심히 만들어내는 건강한 자연 재료 음식이다. 부인이 주방장을 맡고 김 사장은 음식 재료들을 만든다. 20여 년 동안 매주 직접 메밀묵과 두부를 만들어 왔다는데, 얼마나 힘들게 그 일을 해왔는지 김 사장의 손가락 마디는 울퉁불퉁하게 변형되고 휘어져 있다.

손님이 맛있게 먹었다고 인사해 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그에게 손님들은 단골로 보답했다. 지금은 오랜 단골들이 손님의 60~70%를 차지한다.

봄의 끝자락과 여름의 시작 무렵 ‘문경집’에서 야생 생 산나물로 만들어 내는 산채비빔밥은 싱그러운 느낌의 집합이다. 향긋한 초록의 산나물들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향으로 조화롭게 입안을 가득 채운다. 오랜 노하우로 적당히 잘 삶아 너무 무르지 않고 적절하게 씹히는 맛도 좋다.

보통 다른 곳에서는 고추장으로 비벼 먹는데 이 곳에서는 조선 간장으로 만든 양념장으로 비벼 먹는 것이 독특하다. 고추장의 강한 향으로 재료의 맛을 덮어 버리는 것이 아니어서 산나물의 향을 더 잘 즐길 수 있고 뒷맛이 개운하다.

이 귀한 비빔밥을 먹고 있으면 봄의 햇살과 땅의 기운이 농축된 신선한 산속의 생명력이 몸 안을 채우는 듯한 느낌이 든다. 보약 한 첩이 따로 없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데 이 ‘약’은 쓰지도 않고 향긋하면서 맛도 좋으니 금상첨화다. 제철이 가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가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빠진다.

**문경집 서울시 송파구 가락동 70-10번지. 전화 02-443-6653. 산채비빔밥(1인분 1만3000원)뿐만이 아니라 직접 만들어 내는 메밀묵, 청국장 같은 향토 음식들도 맛있다. 일요일은 쉰다.



음식, 사진, 여행을 진지하게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음식이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마케팅·리서치 전문가. 경영학 박사 @yeongs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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