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시험대에 오른 박근혜정부의 갈등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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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전국 곳곳에서 갈등 이슈가 돌출, 출범한 지 100일이 채 안 된 박근혜정부의 갈등 관리 능력을 시험하고 있다.

 그제 경남도의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은 전국 공공의료 논쟁으로 달아오른 상태다. 7년여 끌어온 밀양 송전탑 건설도 한국전력과 밀양 주민 사이 문제에서 중앙정부의 일로 커졌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미리미리 성의를 갖고 대화를 나누고 신경을 썼더라면 이렇게까지 갈등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 아니냐는 얘기를 매번 문제가 빚어질 때마다 듣게 된다”고 질타하는 일까지 생겼다.

 이게 다가 아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 보존 방식을 두고 문화재청과 울산시가 갈등 중이다. 정부가 최근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을 억제하겠다는 방침을 세우자 각각 동서고속화철도와 동남권 신공항 건설이 걸린 강원·부산이 예민해지고 있다. 둘 다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어서 지역의 저항이 예사롭지 않다. 박근혜정부로선 난제가 중첩해오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사회갈등은 4위인데 정부의 갈등조정 능력은 23위란 2009년 삼성경제연구소의 조사에서 드러나듯 우리의 갈등 대처 능력은 많이 부족한 상태다. 갈등은 날로 복잡해져 가는데 정부는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개입하곤 했다. 장관, 국무총리가 나서도 해결이 안 돼 대통령까지 뛰어들어야 했고 정권 차원의 타격을 입곤 했다. 그러니 웬만한 갈등엔 손을 대고 싶어하지 않았다. “임기 중 그냥 넘길 수 있으면 넘기자”며 미루기 일쑤였다.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을 짓는 데 20년이나 걸린 이유다.

 이 참에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갈등의 본질이 다르니 대응 매뉴얼을 만드는 건 쉽지 않을 게다. 그러나 몇 가지 원칙을 정하는 건 가능하다고 본다.

 우선 박 대통령이 언급한 선제적 관리다. 갈등 소지가 있는 사안은 미리미리 챙겨야 한다. 이해당사자들과도 지속적 소통이 필요하다. 이때 필요한 게 진정성이다. 미국산 쇠고기 사태를 겪은 이명박정부가 백서를 통해 한 “정부 정책에 대한 신속하고 일사불란한 집행도 중요하지만 국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신뢰를 쌓아 이를 바탕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게 그 어떤 것보다 선행돼야 한다”는 조언을 되새길 만하다.

 1회용 계책보단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택해야 한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식으로 더 많은 이익을 요구하면 더 많이 보상받을 수 있다는 학습효과가 갈등을 더욱 복잡하고 첨예하게 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때론 지역의 자체 해결 능력을 믿어야 한다. 진주의료원처럼 중앙정부가 개입하는 게 오히려 문제를 전국화·장기화하기도 한다. 대형 국책사업의 경우 임기 내 추진이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국민에게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도 방법이다. 질질 끌다가 회복탄력성이 떨어지는 임기 후반에 뭇매를 맞느니 초반에 정리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청와대의 현명한 대처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