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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수·4개여단|뿌리못박은 유체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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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민당은 다시 고질화된 계파작용의 발동으로 6월초의 원내총무 인준 파동에 이어 지난 5일 중앙상위에서 정무위원·지도 위원 인준이 좌절되는 등 또다시 인사파동에 말려들었다. 지난 5월 20일의 전당대회 후 한달반만에 소집된 이날 첫 상위에서 유진오 총재는 자신이 지명한 5명의 무임소정무위원과 10명의 지도위원에대한 인준 절차를 밟으려했으나 지명된 일부 비주류 정무위원과 지도위원이 돌연 사퇴를 표명하여 유총재는 인준 요청 안을 자진철회, 이로써 신민당은 당의 중섭 기구인 정무회의를 구성치 못하고 당분간 미완성당기구에 의한 운영을 면치 못하게됐다.
지난 6월10일의 제2차 원내총무 인준 파동을 겪은후 일부러 근 l개월간의 냉각기를 거쳐 중앙상위를 소집했던 것인데 이날 상위가 가까스로 의장단만을 선출하고 이 같은 인사파동을 재연한 것은 직접적으로 지도위원에 지명됐던 조한백 홍익표 임철호씨와 정무위원에 지명됐던 김재광 장준하씨등이 갑자기 사퇴를 표명한데 원인이 있으나 근본적인 불씨는 전당대회를 통해 양성화한 파벌 의식과 원내 중심의 인사에 대한 원외의 반발, 필동계의 진출에대한 일부 주류의 반목등이라고 풀이된다.
원내총무 인준 파동이 원내의 반란이었다면 이번 상위의 인준파동은 원외의 반발이라고 할 만큼 원외인사의 작용이 컸던게 사실이다. 그것은 총재단, 전당대회 의장등 선출 「케이스」를 뺀 유총재 임명·지명의 13명 정무위원 가운데 원외는 정헌주 정책위의장 단1명밖에 안 된다는 그들의 항변이 뒷받침한다.
또 진산계일부는 13명중 고흥문·김영삼씨등 2명밖에 차지하지 못했다하여 불만을 터뜨렸다.
전당대회가 대권을 부여한 단일 지도 체제 아래에서 유총재의 지도력이 이같이 시련을 거듭 겪게된 것은 필동직계가 있긴 하지만 유총재를 적극적으로 떠받치는 안정세력이 구축되지 못한데 있다고 보는 측이 많다.
따라서 앞으로 정무회의가 구성된다해도 각파 안배격이된 정무위원의 분포 상황으로 보나 주류내의 각파가 생리적으로 융화 될 수 없는 점, 비주류의 당내 야당성향 등으로 미루어 유총재의 71년을 향한 당근대화 작업에는 진통이 수반할 것으로 보인다.
정당에는 으례 파벌이 있기 마련이지만 신민당내 파벌은 다양다기하여 무려 4개사단 4개여단으로 불리고있다.
이같은 신민당의 얽히고 설킨 계보는 신민당이 헌정이래 수없이 부심했던 한국야당의 20년사를 집약한 통합야당이라는 생성계기와 개인적 친소·혈연·지역·이해관계 등으로 갈래갈래 얽혀있다.
신민당의 계보가 전당대회와 그 이후의 인사파동 등을 통해 양성화되고 재편성된 특징을 보면 ①유진산 부총재를 중심으로 한 주류와 이재형 부총재를 선두로 한 비주류간의 판세는 대의원 수에 있어 56%대 44%로 나타났으며 ②창당이후 주로 진산계에 의존했던 유진오 총재가 독자적인 계보로 이른바 필동직계를 형성하고 있고 ③원래 비주류 편이었던 김대중씨가 구민주계의 상당부분을 끌고 주류편에 독립여단을 형성, 정일형씨를 부총재로 선출한 점 ④구신 한계가 윤보선씨 은퇴 후 조한백·윤제술씨등 지도아래 비주류군단의 명맥을 유지해오다 당 요직인선에서의 탈락과 이재형씨 세력권의 독자적 확대로 점차 구심점이 잃어져가는 경향등이다.
신민당의 재편 돼 가고 있는 당내파벌은 주류에 진산계, 단동직계의 2개사단과 정일형·김대중계, 정해영계의 2개여단, 비주류에 이재형계, 안국동계의 2개 사단과 홍익표·김세형여단, 그리고 아직은 구심점이 없는 중간계열의 여단급 혼성부대등 자그마치4개사단 4개여단이 있고 또 그 안에도 다시 독립부대가 있는가하면 두서너 파벌에 관계를 맺고있는 이들도 없지 않아 각 파벌 내부사정은 더 복잡하다.
주류속의 진산계는 차츰 활동가 중심으로 중점이 옮겨지는 경향이 있어 실질적인 주역은 고흥문 사무총장과 김영삼 전 원내총무.
유총재의 친위대로 형성된 필동직계는 정성태·김홍일의원을 제의하고는 김형일·송원영 의원등 주로 소장파 의윈들로 구성됐으며 현역의원이 진산계와 같이 10명이나 포함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주류에는 또 구민주당의 일부를 모은 정일형·김대중계와 구 신한당 일부를 묶은 정해영계가 있는데 정일형·김대중여단은 호남을 기반으로 전국적인 원외 조직을 통해 전당대회에서 상당한「힘」을 과시했고 정해영 여단은 「파고다·호텔」에 본부를 차리고 조직을 펴나가고 있는 중. 주류가 다수의 원내의 적수에 있어 우세(44명중29명)한 반면 비주류는 원외에 기반을 가졌다는게 특색.
비주류의 이재형사단은 당내에서 진산사단 부대에이어 두 번째로 집단으로 지난 전당대회를 고비로 실력을 드러냈다.
윤보선씨의 직계였던 안국동계와 민주계일부 및 원외 세력을 모은 홍익균·김세형계가 있으나 당내 음지를 벗어나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중간노선을 자처하면서 주로 비주류편에서는 중간파는 박기출·임갑수·정상구의원등의 구 혁신계 인사와 임철호씨등의 구 자유당인사, 장준하·부완혁씨등 이른바 사상계 「그룹」이 있어 각각 다른 생각과 행동으로 당무에 참여하고 있다.
이같은 계보속에서도 원외 당원들은 자금 「루트」를 따라 파벌주소를 이동하고 원내 인사들은 요직에 따라 중간「보스」를 달리하는 경향이 있어 파벌구성원은 항시 유동적이다.<조남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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