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포드가 떠나겠나… '설마'가 호주 잡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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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호주 공장 철수.”

 23일 오전 호주의 공영방송 ABC는 긴급뉴스를 전했다. 다음 날 호주의 유력지 ‘디 에이지’는 1면부터 11면까지를 포드의 호주 공장 폐쇄 발표로 도배했다. 이 신문은 이를 ‘시대의 종언(End of an ERA)’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에선 더러 걱정은 하지만 ‘설마’ 하는 글로벌 기업의 공장 철수가 호주에선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포드 호주의 최고경영자(CEO) 봅 그라지아노는 이날 “호주에 있는 포드 공장의 생산을 단계적으로 줄여 2016년 10월 완전 중단한다”고 밝혔다. 포드는 호주 빅토리아주 질롱과 멜버른에 2개의 완성차 조립공장과 엔진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호주 언론은 해당 지역 주지사 등이 백방으로 뛰었지만 철수 결정을 막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로써 포드는 1960년 호주에서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한 후 56년 만에 공장 문을 닫게 됐다.

호주 사회 충격, 1만 명 실업자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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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포드의 호주 고유 모델인 팰컨은 72년부터 생산돼 호주 운전자의 사랑을 받아온 대중 자동차여서 소비자의 충격도 컸다. 그라지아노는 “호주 공장의 생산 비용은 유럽의 2배, 아시아의 4배”라며 “호주 공장의 생산구조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포드는 이번 발표에 앞서 러시아와 태국에서 생산을 늘리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호주 사회의 충격은 컸다. 당장 일자리가 비상이다. 포드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1200명, 관련 부품업체 등에 미칠 여파를 감안하면 최대 1만 개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란 분석(호주 노동조합협의회)까지 나온다. 게다가 호주 정부는 2000년 이후 지난해까지 11억 호주달러(약 1조1882억원)의 보조금을 포드에 지급해 왔다. 세금을 민간기업에 투입하더라도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보조금은 근본적인 경쟁력 약화를 감당해내진 못했다. 포드가 지난 5년간 호주에서 낸 적자는 6억 호주달러(약 6482억원)에 이른다. 2002년 포드 호주 공장에서 생산한 차는 7만4613대가 팔렸으나, 지난해 판매량은 3만4415대에 그쳤다.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 데는 고비용 생산구조가 있다. 호주는 28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행복지수에서 3년 연속 1위(10점 만점에 7.91점)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꼽혔다. 최저임금은 시간당 15.96호주달러(약 1만7000원)다. 한국(4860원)의 3.4배에 이른다. 베이비 보너스 등 복지제도도 든든하다. 그러나 노동생산성은 OECD 국가 중 중위권(2011년 기준 13위)에 머물러 있다. 행복 만족도와 경제성장의 균형추를 맞추기가 그만큼 쉽지 않은 셈이다. 생산자 입장에서 높은 생산비용은 고스란히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런 부담이 누적되면서 호주 내 자동차 생산량은 2008년 32만 대에서 지난해는 22만 대 수준으로 줄었다. 빈자리는 수입차가 메웠다. 호주달러의 가치가 강세를 보이면서 수입차 가격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호주달러 가치는 미국달러와 거의 1대1 수준이다. 호주 제조업노총의 폴 바스티안 대표는 호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도 일본처럼 통화가치를 낮추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주달러 강세에 수입차 밀려와

 고비용 생산구조와 높은 통화가치 등의 문제가 겹치면서 완성차 업체들이 하나둘 짐을 싸고 있다. 1992년 닛산이, 2008년 미쓰비시도 철수했다. 포드가 철수하면 호주에서 자동차를 만드는 업체는 GM홀덴과 도요타 두 곳만 남게 된다. GM홀덴은 과거 GM대우와 같은 성격의 회사로 보면 된다. 이 회사에는 지난 10여 년간 20억 호주달러 이상의 보조금이 지급됐다. 호주에선 보조금을 계속 줘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호주 ABC 방송의 데보라 스틸리 아태뉴스센터 에디터는 “포드로선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포드가 단계적인 철수를 하는 사이 얼마나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한국 업체에 포드의 철수는 기회이자 위기다. 호주 자동차 시장에서 8.2% 점유율을 가진 현대차에는 시장 공략 기회가 많아졌다. 그러나 호주 1위인 도요타(19.6%)는 호주·태국 자유무역협정(FTA)을 이용해 태국 공장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저율 관세로 호주에 들여오고 있다. KOTRA호주 멜버른 무역관 관계자는 “호주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부품을 공급 중인 국내 업체는 대금 결제에 신경 써야 한다”고 당부했다.

해외차 공장 철수, 남의 일 아니다

 국내 자동차 산업에는 포드의 호주 철수는 위기 경보이기도 하다. GM은 한국이 고비용 생산구조로 가고 있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때 GM 본사 측이 통상임금 문제를 거론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국의 시간당 자동차 생산성은 미국의 절반 수준에 못 미친다. 게다가 자원이 풍부한 광산 산업이 떠받치는 호주 경제와 달리 한국은 자동차 산업의 영향이 크다. 호주 경제에서 자동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6%지만, 한국은 그 두 배인 12% 수준이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자동차 업체는 성장하느냐 주저앉느냐는 기로에 서 있다”며 “해외 자동차 업체의 철수나 국내 업체의 해외 생산 확대는 남의 일이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전기료가 싼데도 불구하고 석유 1배럴당 생산성이 일본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구조적인 고비용 생산체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멜버른·시드니=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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