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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아진 『여권창구』|「불요불급 해외여행」통제 이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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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해외여행이 올해 들어 매우 어려워졌다고들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여러 가지 목적으로 해외에 나가기 위해 여권을 발급 받은 사람이 7만여 명에 달했다. 그러나 5월말 현재 발급분을 작년도와 대비해 보면 작년의 1만5천7백30건에 비해 올해는 1만5천4백34건으로 2백96건이 줄었다. 이같이 여권발급건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국민의 해외여행이 많이 억제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작년만 해도 외무부 여권과에 여권발급신청을 내고 구비서류만 완비하면 거의 발급되던 여권이 올4월부터는 여행목적이 「불요불급」이라 판단되면 모두 「부결」되어 버린다. 그래서 신청건수의 5분의1 정도만 발급되고 있다는 것.

<여행목적부터 가려>
여권발급관서인 외무부는 여권법과 동시행령 그리고 여권법 시행규칙 등 법령에 의해 서류상의 미비 등 주로 형식상의 심사만으로 여권을 발급해 왔으나 지난 1월23일부터는 「여행목적」까지 심사, 「불요불급」여부를 판정해서 여행을 실질적으로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외무부의 여권 발급 억제는 정부의 「해외여행통제방침」에 따른 것이며 이같은 방침은 지난 1월18일 박 대통령이 외무부 연두순시 때의 특별지시에 따라 마련된 것으로 외무부는 1월23일자로 관계부 장관에 통첩, 협조를 의뢰하고 각 재외 공관장들에게도 시달했다.
이같이 마련된「해외여행 통제방침」을 보면 ①국제적 회합의 성격을 띠지 않는 사회사업 「세미나」, 사회사업시찰, 사회단체친선방문, 사회사업회의 참석 ②국제적 성격을 띠지 않는 종교관계 세미나, 시찰, 친선 방문 ③관광여행으로 간주되는 각종 위장 여행(여관업자, 제과업자, 목장업자들의 단체여행과 양재, 미용, 꽃꽂이, 주물, 동창회, 졸업식, 동향인의 모임 참석 등이 고 예) ④부인회 관계시찰과 의의 참석 ⑤공무원의 부인, 국영기업체 임원의 부인, 회사 간부 부인의 불필요한 여행 ⑥불필요한 문화, 스포츠 교류를 위한 여행 등은 모두 억제하도록 되어 있다.

<경력·직업 참작>
이 방침에 따라 외무부가 각 관계부 장관에게 보낸 협조 요망 사항은 ①문화용무여행자(공연, 교포 및 국군 위문, 운동 경기, 시찰, 회의 참석, 친선 방문, 취재 기자)에 대한 외환사용 승인 및 경비지급 인정은 30일 미만이라도 재무부에서 발급하고 ②주무장관 추천 때 통제를 철저히 하며 ③신원 조회시 신청자의 경력과 직업이 여행목적에 부합되는지 여부를 조사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같은 해외여행 통제방침이 마련된 후에도 박 대통령은 기회있을 때마다 불필요한 해외여행을 억제할 것을 외무부에 지시해왔고 18일 하오 청와대에서의 정부·여당 연석회의에서도 국회의원이나 고급 공무원 부인들의 해외여행을 극력 억제하라고 지시했다.

<외환 사정 악화 때문>
이는 우리나라의 외환사정이 전보다 악화하고 있고 불필요한 여행이 「보따리 밀수」를 조장하고 있으므로 이를 극복하려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명문으로 나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여행목적지가 「홍콩」인 경우 외무부는 여권을 발급하지 않고 있으며 「경유기」추가 신청에도 「홍콩」만은 허가해 주지 않고 있는 것을 봐도 「보따리장수」의 여행을 억제하려는 의도가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정부의 해외여행통제방침이 일관성이 없고 획일성이 없다는 비판의 소리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4월부터 여권 발급 건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외무부는 자랑하고 있지만 주무장관의「해외여행 추천제도」가 실제로 유명무실해 지고 있지 않느냐는 견해가 많다.
주무부장관이 해외여행을 추천했지만 외무부의 심사과정에서는 실상 이 추천이란게 있으나마나 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주무부에서 해외여행 적격자로 추천되었지만 외무부의 여행목적과 목적지 심사에서 불필요한 여행으로 판정되면 여권이 나오지 않는다.

<획일성 있는 운용을>
따라서 주무부장관의 추천제도에 대한 합리적인 운용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다. 아뭏든 이같은 정부방침이 국민의 「여행의 자유」를 과도히 억제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나 하는 우려와 함께 이른바 「불요불급」여행의 유형이 아직 정형화되지 않고 있어 운용과정에서 당분간 잡음이 일 것 같다. <박석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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