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살상무기 숨긴 흔적 잡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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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이 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라크가 안보리 결의(1441호)를 위반했다며 그 증거를 제시했다.

파월 장관은 녹음 테이프와 사진, 비디오 영상과 그래픽을 동원한 '멀티미디어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은닉과 알 카에다와의 연결고리가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파월은 연설 도중 녹음 테이프를 들려주고 확대된 위성사진을 보여주는가 하면, 증거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민감한 사항인 자료 입수경위까지 공개하는 적극성을 보였다.

◇대량살상무기 은닉 관련 감청자료=파월이 제시한 전화 감청자료는 이라크 정부가 약 30개에 달하는 사찰지역을 사찰단이 도착하기 수일 전에 말끔히 치우라고 명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이라크 공화국수비대 사령부의 한 장교는 지난달 30일 현장 지휘관에게 "우리는 어제 모든 지역을 완벽하게 치우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 메시지에 포함된 내용을 수행한 뒤 즉시 메시지를 폐기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돼 있다.

◇위성사진=파월이 공개한 위성사진들은 주로 대량살상무기를 저장해온 곳으로 알려진 무기저장시설이 완전히 '청소'된 모습을 담고 있다. 사찰단 도착 이틀 전 촬영된 또 다른 사진은 탄도미사일기지에 운송 차량들이 대기하고 있는 장면을 담고 있어 무기 이동 작전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망명자의 진술=생화학무기 생산시설에서 근무하다 망명한 이라크인들이 이라크가 생화학무기를 제조.저장하고 있다고 진술한 내용을 공개했다.

또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이라크의 모든 과학자에게 민감한 정보를 사찰단에 유출할 경우 자신들은 물론 가족까지 '중대한 결과'를 맞을 거라고 경고했다는 진술도 공개됐다.

◇그래픽 자료=파월 장관은 탄저균 등 생물무기 생산과 연구를 위한 이동식 시설을 트럭 위에 설치해 손쉽게 은폐할 수 있다는 내용을 그래픽으로 설명했다.

이라크는 적어도 18개의 이 같은 이동식 실험 및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있다고 파월 장관은 주장했다. 또 이라크 정부는 치명적인 생물작용제를 수도나 공기를 통해 광범위한 지역에 무차별적으로 살포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했다고 덧붙였다.

◇알 카에다 연계=알 카에다의 유명한 테러리스트인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가 이라크에 체류하고 있다면서 계보를 그래픽으로 설명하고, 사담 후세인의 테러조직 지원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화학무기=파월 장관은 이라크가 불법 화학무기 시설의 핵심 부문을 합법적 민간시설 속에 잠입시켰다고 주장했다. 이들 시설은 합법적인 생산활동을 통해 불법 무기를 생산할 수 있으며 최소한의 자금 투입으로도 순식간에 군사용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파월 장관은 이라크가 현재 1백~5백t의 화학작용제를 생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영국의 BBC 방송은 "파월 장관이 다양한 자료를 동원해 극적인 연출을 했지만 전반적으로 증거의 설득력은 떨어진다"며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정당화하기에는 크게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서정민 기자 <amir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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