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보일러실에서 詩가 끓어오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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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줄/아침 일찍 반짝하니 거기 있음을 알겠다./허리 굽혀 갔다, 되짚어 오다 고추잠자리/망에 걸려 파닥이는 걸 보았다./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함께 흔들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중략)-‘거미’중에서.”

최근 제2회 노작문학상을 받은 대전의 향토 시인 이면우(李冕雨.52.대덕구 평촌동)씨. 그는 대형 건물의 보일러를 수리.관리해온 베테랑 기술자다.

28년 동안 보일러와 함께 생활해 온 李씨는 지난해 펴낸 시집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창작과 비평사 刊)에 실린 '거미'등 네편의 시로 노작문학상을 수상했다.

노작문학상은 일제시대에 '나는 왕이로소이다' 등 민족적 작품을 남긴 노작(露雀)홍사용(洪思容)시인을 기리기 위해 제정됐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대청댐 수몰지역에서 태어난 李씨는 찢어지도록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중학교만 졸업한 채 학업을 접어야 했다. 어린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공사판에서 잡일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덩치가 작고 어리다고 처음엔 심부름만 시키더군요. 정식 인부가 돼 삽자루를 쥔 뒤에는 얼마나 기뻤던지 정말 열심히 일만 했어요."

그는 75년 방위소집 근무를 마친 뒤 돈을 벌기 위해 보일러공이 됐다. 하지만 돈을 모으기가 쉽지는 않았다. 경제적 사정으로 이웃 마을 처녀와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1년간 동거하다 79년 대전시가 주선한 합동결혼식 덕분에 아내에게 면사포를 씌워줄 수 있었다.

생계가 어려워 아이는 결혼한 지 10년이 지난 39세 때 낳았다. 식구가 한명 늘자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좋아하던 술과 담배도 끊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인생에 새로운 전기가 찾아왔다. 고생하는 동생을 안쓰러워 하던 큰 형이 보내준 박용래의 시집 '먼바다'가 잠재돼 있던 그의 시심(詩心)을 일깨운 것이다.

"출근 버스 안에서, 일 하는 틈틈이 시집을 1백번쯤 읽으니 '나도 시를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아내와 아이가 안방에서 잠든 사이 불기도 없는 윗방에서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무작정 시를 썼죠."

평론가들은 李씨의 시를 '노동시'로 분류한다. 관념적이고 현학적(衒學的)인 '책상 머리 시'들과 달리 처절한 삶의 현장이 시의 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심사를 맡았던 유종호(문학평론가)씨는 "이면우의 시에는 생활의 쓴맛과 생활인의 실감이 정갈하게 담겨 있다. 경험의 진득한 응시와 반추, 그리고 그 깔끔한 처리는 신뢰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평했다.

하지만 그의 시는 80년대를 풍미했던 박노해나 백무산 등의 시와는 느낌이 다르다. 노동자들의 삶과 애환을 노래하지만 이데올로기가 없는 데다, 서정적이고 진솔하다.

가족.자연.사람 등이 주된 모티브다. 이런 연유에서일까. 외환위기 때인 98년 그가 실직의 아픔을 달래며 쓴 '생의 북쪽'은 '평론가가 뽑은 2000년 대표시'에 수록되기도 했다.

李씨는 수상 소감에서 "시는 내 가난과 내면의 억눌림이 분출하는 비상구였고 지금도 생활의 고난이 나를 그림자처럼 따르고 있다. 하지만 이 땅의 평범한 사람들이 내 시를 읽고 마음이 풍족해진다면 나는 만족한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대전의 한 용역회사에 소속돼 건물의 보일러와 수도.가스시설 관리를 맡고 있다. 하지만 2년 전 다리를 다친 뒤 주말마다 즐겨온 등산도 포기한 채, 혹시나 월급 1백만원짜리 직장을 잃지 않을까 고민 중이다.

대전=최준호 기자 <choi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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