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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 전화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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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요즈음 서울 주재 외교관이나 언론인들로부터 오는 전화가 흥미롭다. 용건이 대체로 비슷하다. 한마디로 “도대체 누구에게 전화하면 좋겠느냐”는 내용이다. 시중 모임에 가봐도 대화 내용이 비슷하다.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예전에는 정책 본질에 대한 갑론을박이 대세였다. 하지만 지금은 박근혜정부의 ‘누구에게 전화해야’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을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박근혜정부의 정책 혼선과 결코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예컨대 통일부 장관이 대북 대화 제의를 하는 날 청와대는 이를 부정했고, 다시 대통령이 나서서 이를 수정했지만 다음 날 총리가 또 다른 소리를 하는 해프닝이 발생했던 것을 우리 모두는 기억하고 있다. 결국 대통령의 ‘말씀’으로 정리되었지만, ‘국정 책임제’를 내건 박근혜정부의 책임총리와 책임장관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여기에 윤창중 사건은 이런 혼선을 더욱 백일하에 드러내 버렸다.

 원래 “누구에게 전화해야 좋을까”라는 표현은 1970년대 중반 키신저가 사용하면서 유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키신저는 유럽의 혼선을 보고 “누구를 상대해야 할지, 또 비록 새로운 상대를 찾았다 하더라도 그가 실제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썼다고 한다. 바로 박근혜정부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현상은 어느 정부나 초기에 흔히 겪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박근혜정부는 좀 달라 보인다. 이전 정부에서는 ‘전화해야 할 누가’ 정부가 아닌 비선 조직에 있어 국정의 이중 구조가 문제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화해야 할 그 누구’를 찾기가 어렵다. 대통령 형님이나 대학, 교회 인맥이 설쳐대던 이명박정부의 폐해를 반면교사로 삼은 데서 나타난 현상처럼 보인다.

 그래서 박 대통령은 ‘국정 책임제’를 들고 나왔다. 하지만 책임국정은 아직 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혼자서 자신의 생각대로 국정 운영 시스템을 틀어쥐고 나가는 모습이다. 자연 모든 국가의 의사결정 시스템은 대통령의 눈이나 입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이러다 보니 대통령과 국민을 이어줄 연결고리가 없다. ‘누구에게 전화해야 할지’ 모르는 형편이다. 결국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하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대통령이 일일이 직접 전화를 받을 수도, 받을 리도 없다. 그래서 방법은 둘 중 하나다. 신문 광고나 집회를 통해 대통령에게 직접 호소하는 방법밖에 없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께 드리는 호소문’이 신문 광고에 등장하고 있다. 시청광장에서의 집회도 줄을 이을지 모른다.

 이렇게 되면 국정의 모습이 어떠해질까? 아마도 대통령이 말하고 국민이 반응하는 제왕적 국정의 모습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민의 전화에 직접 답하기 위해 대통령은 지시를 하고 관료는 처리해야 하며 여기에 국민은 열광하는 국정이다. 제왕적 대통령하에 관료공화국이 꿈틀거리는 모습이다.

 하지만 효율적 국정 운영은 반드시 정당이나 의회의 견제를 필요로 한다. 대통령학의 권위자인 번즈의 지적대로 “대통령제에 가장 필요한 것은 국정을 자기 뜻대로 끌고 가려는 대통령의 가치, 대통령의 방식, 대통령의 제도를 견제할 수 있는 반대의 존재”이다.

 그런데 이런 견제가 존재하는가? 민주당 유인태 의원의 지적이 의미심장하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에 맞서 국민을 정치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정치가는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이런 적이 없었다. 3김 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이명박 정권에서도 박근혜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주를 막는 길항적 정치가였다. 그런데 지금 이런 정치가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국정책임자들은 물론이고 정당과 의회, 시민단체가 모두 발기부전 상태에 빠져들고 있는 상황이다.

 청와대는 말하고 싶을지 모른다. 카이사르가 국민을 위해 권력을 사용하고 있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그러나 아무리 권력을 선의로 행사하더라도 우리는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권력의 위험성에서 눈을 떼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만고의 정치적 진리이기도 하다.

 국가의 의사결정은 물론이고 정치 세력 간의 권력 배분도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되고 있는 현실이다. 중간의 ‘누구’가 없다. 대통령은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고 국민은 대통령에게 직접 접근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질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과 국민의 일대일 관계는 결코 건전한 정치 구도가 아니다. 효율적인 국정 운영과 대의정치를 위해서도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서 ‘책임 있게 전화를 받아줄 그 누구’가 필요하다.

장 달 중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