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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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울의 휴일은 악몽 같다. 지난 일요일 창경원에 몰려든 인파는 무려 30만명이 넘었다. 미아만 해도 3백28명. 아이들의 짜증스러운 울음소리, 아낙네들의 사람 찾는 고합소리, 잡상인, 소매치기, 날치기, 취객의 주정, 젊은이들의 고성방가, 발길에 차이는 쓰레기 더미, 그리고 상인들의 폭력적인 호가, 먼지바람, 뿌연 빛의 햇빛, 때묻은 꽃…서울의 고궁은 또 하나의 생지옥이다.
길거리로 나서도 사람의 멀미, 요란한 「클랙슨」, 공포를 던지는 자동차의 급정거, 교통순경의 호각소리,「버스」를 타는 아귀다툼… 이것이 상춘의 행락이다. 휴일은 차라리 집에 꼭 갇혀 있는 편이 안락하다. 공연히 집을 나서면 지옥경 이나 즐기게 (?) 된다.
서울엔 지금 공원이 없다. 남산은 서울의 인구가 3O만명이던 시절보다도 규모나 그 자연경관이 훨씬 줄어들었다. 자연도 그 무렵과는 견줄 수도 없이 살벌하며, 어느 한구석 응달을 찾기가 힘들다. 그리고는 어디로 갈까. 유료고궁을 제외하곤 갈곳이 별로 없다 30만명용의 정원에서 4백만명이 복작거려야 하는 「질식지경」인 것이다.
서울시민의 자연은 불과 50년만에 13분의1로 축소되었다. 그나마 가로수조차 온전하지 못하다. 대부분 양실조로 오히려 꼴사나운 모습이며, 「콘크리트·정글」은 푸른 하늘조차 빼앗아 갔다. 도심이 아니라도 맑은 공기를 마시기는 힘들다. 교외엔 포장되지 않은 길의 먼지투성이, 도심엔 자동차 배기「개스」로 목이 메인다.
실로 서울의 모습은 허위대만 훤칠하다. 그 속에서 시민들은 질식해가고 있는 것이다. 서울은 인간미가 없는 황량한 모습으로 그 내면이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시인 「휘트맨」은 말한다. 『미국에 자연의 경관이 없었던들 민주주의는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상의 낙원이라는 나라들은 예외 없이 자연을 누리고 있다. 자연과 민주주의는 비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스웨덴」의 국민소득이 세계의 정상인 것은 우연만은 아니다. 시민공원, 바로 고급 유흥객이나 즐기는「고급풍치」가 아닌, 「서민의 공원」을 계획하는「인간시장」은 없겠는가. 조화로 시폐광장이나 꾸미는 건조한 도시계획으로는 서울을 지옥에서 건질 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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