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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미·일 두전문가 특별기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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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구는 오늘날 격동의 와중에 있다. 변동하고 있다는 「뉴스」가 하루도 없는 날이 없다. 「폴란드」청년들은 언론과 집회의 자유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왔으며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개혁파가 공산당의 「리더쉽」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는 실질적인 경제개혁을 수행하고 있다. 하고 있는 징조가 엿보인다. 얼마전까지만해도 모든 분야가 너무나 조직화하여 있어 변화「루마니아」는 소련과의 유대를 약화하고 있다. 이와같이 이르는 곳마다 지식인들이 동요란 도시있을 수 없는 것처럼, 그렇게 잠잠하던 바로 그 지역에서 위에서 보는 바와같이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이 지배하고 있는 전체주의 정권과 한 장의 석판과 같은 획일적인 생활방식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1956년 민중봉기사건이 발생, 그결과 「폴란드」에서 「블라디슬라브·고물카」의 개혁파정부가 서고 자유의 투사들이 「헝가리」에 참다운 민주정부를 수립하려 하였는데, 이래 공산주의자들이 지배하는 동구는 이미 전일의 동구는 아닌 것이 되었다.
1956년의 「폴란드」와 「헝가리」사태는 오늘의 격동을 알리는 시발점이었고 오늘의 자유화 운동의 촉진제 구실을 했다.

<제2루마니아 속출>
아마도 동구에서 가장 극적이며 가장 많이 화제에 오르고 있는 사건은 소련지배에 대한「루마니아」의 도전이다.
지난 2월26일 「부다페스트」에서는 67개 공산당이 회합했다. 「루마니아」대표단은 중공을 더욱 고립시키고 세계공산당에 대한 지배권을 다시 확립하려는 소련의 노력을 좌절케하려는 의도로 공산당 대회를 탈퇴하고 말았다.
「부다폐스트」회의가 끝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소피아」에서도 공산당 회의가 열렸다. 「루마니아」는 미·영·소 3개국이 공동으로 작성한 핵확산금지 조약안을 반대함으로써 또다시 소련에 도전했다.
기회있을때마다 「루마니아」는 자유세계보다 중공을 기쁘게하는데 더 깊은 관심을 보이는 듯했으나 번번이 소련「블록」의 단결을 더욱 약화시켰다.
한 소련외교관은 최근 이렇게 논평했다. 『「루마니아」는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으며 조만간 소련「블록」의 다른 회원국들도 「루마니아」의 뒤를 따라갈 것이다.』
그러나 「루마니아」의 「독자노선」이 강화되면 강화될수록 동구에 대한 소련의 지배를 굳히려는 징조도 강화되고 있다. 소련권의 전체적인 경향은 분산이라기보다 방향전환의 성격을 더 뚜렷이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소의 압력도 허사로>
동독의 「발터·울브리히트」를 빼놓는다면 「체코슬로바키아」의 「안토닌·노브트니」보다 소련에 더 충실한 동구공산당 지도자는 없었다.
이 두사람은 변화의 물결을 꺾으려고 애써왔다. 개혁파들은 꽤 오래전부터 「노보트니」(3월22일 마침내 대통령직을 사임했다)에 압력을 가해왔다.
67년12월19일부터 21일까지 열린 「체코슬로바키아」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노보트니」를 공산당 제1서기직으로부터 추방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런 움직임이 있었을 때 소련공산당 제1서기「레오니드·브레즈네프」가 그를 구하러 달려왔다.
「브레즈네프」는 자기의 충실한 추종자인 「노보트니」의 정치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얼마간의 시간적 여유를 얻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브레즈네프」가 「모스크바」로 귀국한 지 얼마안된 지난 1월3일부터 5일까지「프라하」에선 「체코슬로바키아」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열렸다.
그결과 「노보트니」가 실권하고 「슬로바키아」의 개혁파인 「알렉산더·두브체크」가 공산당 당수자리를 빼앗았다.

<국민생활 향상 도모>
새로 제1서기가 된 「두브체크」는 첫 공개연설에서 『우리는 여론, 인민들의 의견과 태도를 면밀히 주시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의 이말은 참으로 우리에게 변화를 느끼게 한다.
이와같은 정치적 변화는 「체코슬로바키아」와 「헝가리」에서 이미 겪고 있는 경제적 변화에 발을 맞추었다. 새로운 제도의 바탕이 되는 요인으로는 이윤목적, 생산자들의 의욕, 계획의 지방분산화, 소비자들의 수요와 욕망을 들 수 있다.
68년에는 생산자의 1인당 실질소득과 인민들의 소비량을 증가시키는 계획이 서있다.
국민생활향상과 보건사업 개선을 도모하고 대부분의 산업체에까지 44시간(1주) 노동제를 확대 적용하는 야심적인 계획이 또한 작성되었다.
이와같은 일련의 조치는 중공업을 중시하는 「스탈린」식의 전체주의 경제관과는 상당히거리가 먼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위에서 말하는 어떠한 조치도 「자본주의 경제체제」에로 지향하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사기업 확대 없을 듯>
사기업에 바탕을 둔 소규모의 공장이 허용되는 경우라할지라도 그 공장주의 가족외의 다른사람을 고용한다든지 자본을 축적하는 일은 금지되고 있다.
역설적인 이야기 투성이로 들릴지모르나 이와같은 생산확대제도는 공산경제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지식인들과 청년들의 운동은 아마도 가장 중대한 사태발전을 의미할 것이다.
그들은 날이면 날마다 공산집권당국에 과감히 대항, 급진적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예컨대 지난해 8월 「체코슬로바키아」지식인들은 공산정권의 부당한 반「이스라엘」정책을 공공연히 비난하는 선언서를 발표했다. 「헝가리」지식인 회의에서 1백16명의 대표 중 약1백명은 「이스라엘」을 「침략자」라고 낙인찍는 정부측 결의안에 서명하는 대신 퇴장해버렸다.
이와같은 사태를 평가함에있어 우리는 자유세계의 기준을 적용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전체주의제도의 기본적인 불합리를 풀이하는데는 자유인의 논리가 들어맞지 않는다.
믿기어려운 변화가 일어날지모르나 이러한 변화가 장래에 반드시 영향을 준다고는 볼 수없다.
유명한「스탈린」주의자인 「루마니아」공산당지도자 「니콜라에·체아우세스큐」는 이제는 개혁논자이며 점차 국가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쌓아올리고 있다.
한편 「비신스키」추기경과 사실상 정치적 동맹을 맺어 56년에만해도 국가지도자로 인정을 받았던 「고물카」는 오늘날 「폴란드」의 변화를 완강히 반대하는 이론가의 지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구제도 복귀 어려워>
이와같은 변절은 동구사태를 하나의 수수께끼로 만들고 있다. 동구정세를 분석함에 있어 유의해야할 가장 중요한 점은 개혁파 지도자나 지식인들은 말할 것 없고 심지어 청년들까지도 사회주의 제도의 종식을 모색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구제도에로의 복귀를 원하는 사람은 그들중에 더구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56년의 「헝가리」혁명의 지도자들과 같이 오늘의 청년지도자들은 사회주의 제도를 개혁하기를 원하는 것이지 그 제도자체를 없애려하지 않는다.
56년 「헝가리」사태는 「스탈린」주의자들이 변화를 요구하는 세력과 제휴함이없이 그들을 억압하기 위해 폭력에 호소했기 때문에 유혈혁명으로 변모했다. 「헝가리」사태는 아마도 오늘의 동구사태의 방향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본보기가 될 수도 있다.
1억의 인민들의 운명은 공산지도자들이 어떤 노선을 취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만일 「스탈린」주의 잔당들이 정치생명을 다소나마 연장하게 된다면 긴장이 증가되고 거의 틀림없이 폭발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전체주의 한층 완화>
그대신 이들 국가지도자들이 변화를 바라는 세력과 손을 잡는다면 그들의 정권의 전체주의적 성격은 한층더 줄어들 것이다. 짧은 안목에서보면 후자의 경우는 사태주의 체제를 해치기보다 이 체제를 강화하기 마련이다. 하나, 긴눈으로보면 「자유주의적」발전속에서 전체주의 정권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인가?
그런 환경에서 전체주의 정권이 존속한다는 것은 너무나 역설적인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오직 시간만이 이에대한 답을 줄 것이다. 전체주의 정권들은 지난날 그렇게도 여러차례 수수께끼같은 사태발전으로 세계를 놀라게했다.
그렇기때문에 앞으로는 어떤 일이 일어나든 세계는 새로운 사태에 너무 놀라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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