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산금지란 무엇인가 (홍종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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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산 아낌은 애국하는 길>「입산금지」란 도대체 무엇을 뜻하며 언제까지 어쩌자는 것인가.
국토의 대부분이 산악으로 이루어진 나라의 국민 된 우리는 산을 사랑하고, 산을 아끼기 위하여 산에 접근하는 것이 애국하는 가장 보람있는 국민적 자세요, 방법의 하나일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4월에 들어가면 진달래·개나리 피고 버들가지가 파랗게 물이 드는 화창한 봄을 맞이하는 이때에 바로 서울의 뒤뜰 같은 북한산·도봉산 일대의 아름다운 산을 두고 「입산금지」라고 하여 서울시민이 여기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한다는 일이란 이 무슨 「법」인가. 공산간첩이나 무장공비는 생명의 위험을 걸고 라도 싸워 잡아야 한다는 일은 경찰에만 맡겨둘 수 없는 일임을 우리시민들은 다 잘 알고 있다고 본다.
지난 1월 21일 밤 무장 공비가 시내에도 청와대 근처까지 들어와 경찰과 접전을 하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시민들은 격분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 중에는 무장공비와 멱살을 잡고 엎치락뒤치락 싸우다가 생명을 바친 용감한 시민도 있었다. 그때 무장공비가 북한강 줄기를 타고 세검경 계곡으로 내려왔다는 것도 잘 알고있다. 그런데 오늘 이때의 북한산과 도봉 일대의 산악지대는 공비수색작전상 어떤 상황에 있다고 시민의 접근을 허하지 앉는 「입산금지」란 말인가.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이면 북한산, 도봉산 일대는 서울시내도 명동거리나 종로 바닥 같이 남녀노소와 산을 즐기는 사람들로 해서 길은 여기저기 어려울 만큼 붐비고 있는 그런 사실을 경찰은 아는가 모르는가.
많은 청년학생들의 전문적인 등산훈련과 또 그보다도 더 많은 일반시민들의 산책의 의욕과 거기서 얻는 시민보건상의 무한 심신의 유익을 그 누구가 특정한 목적 없이 어떤 권한으로 막연히 억제할 수 있을 것인가.

<간첩작전에도 역효과>
어느 때이고 북한산과 도봉산 일대의 산중에 무장간첩이나 공비일당이 숨어 있을 것이라는 믿을만한 정보에 의하여 수색작전을 벌이고 있다면, 일반시민의「입산금지」명령도 한때 필요할 것이다. 시민들은 이에 응당 전폭적인 협력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무장간첩이나 공비들의 서울침입이 가장 쉬운 통로가 북한산, 도봉산 일대일 것이라고 하여 일반시민들로 하여금 이 근처에 접근치 못하게 한다면 그 대신에 그 산중에는 누구만이 들어가서 활보하고 다닐 수 있다는 것인가? 공비가 출몰함직한 통로 몇 곳에 경찰관이 숨어서 망을 보고 있으리라고 짐작된다.
그러나 그 경우의 경찰관은 과연 몇 명 가량이 밤낮 24시간 지키며 망을 보고 있는 장소는 또 몇 곳이나 되겠느냐. 산이란 것은 생각보다 크고 험한 곳이다. 제한된 경찰의 인원으로 제한된 장소를 지킴으로서 그 효과에 만전을 다하기란 극히 어려운 것이다.
원래가 간첩을 잡는다는 일이 경찰의 사찰만으로 되기 어려움은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북한과 도봉에 있을 수 있는 간첩의 출몰을 적발하는 일도 등산 훈련하는 학생들이나 일반산책객의 협력이 절대 필요하다고 본다.

<사람 많으면 색출 빨라>
지난번 1월 21일의 경우에도 그렇다. 19일 저녁에 무장공비가 발견되었다는 정보가 있은 다음, 일요일인 21일 아침부터 경찰은 서울 뒷산에는 사람을 접근시키지 않았다. 경찰은 산밑에서 등산객의 등산길을 막는다는 일이 공비색출이나 경비의 전부가 아니었던가 싶다. 공비의 포로 김신조의 말에 의하면 공비 일당은 비봉 근처에서 사람의 기침소리 하나 없는 조용한 가운데 낮잠이나 자며 지형정찰을 하다가 저녁 녘에 사람하나 없는 계곡 길로 유유히 내려왔던 모양이다.
만일 그날 아침부터 등산객이 산에 올라갔더라면, 공비들은 일찌감치 발견되었을 것이고 또 어딘가 숨었다가 저녁에 내려온다 해도 경찰에게보다는 등산 갔던 사람들에게 먼저 발견되었을 것이다. 일반 산책객도 그렇지 않으려니와 등산훈련에 뜻을 가진 청년들이라면 공산간첩들 앞에 누구보다도 결코 비겁치 앓을 것이라고 나는 확실히 믿는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속담도 있다. 공산간첩을 결코 얕보아서 아니 될 것이고 저들의 무장침략에 대한 경계와 준비를 결코 게을리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적어도 6·25의 공산침략을 경험한 우리 국민들로서는 누구나 공산북괴의 침략의 야욕이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다. 어떤 종류의 침략의도이고 이를 부숴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국민의 의기를 높여야 한다. 공산간첩이니 무장공비라느니 하여 저들과 싸워 이겨낼 마음의 준비 없이 미리부터 몸을 사리고 겁을 집어먹고 뒷걸음질을 한대서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져서 자빠지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미리 겁내면 사기저하>
이제 서울시민들은 침략의 공산도당들이 한 걸음 다가온다면 우리는 두 걸음 내밀고 나갈 의기를 가져야 할 때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간첩의 통로가 됐었다든지, 무장공비들이 낮잠을 자고 있었다든지 하는 산이라고 하여 그야말로 먼 산 바라보기로 서울시민들은 「입산금지」의 울타리 밖에서 그 아름답고 기개 높은 정다운 산을 먼발치로 쳐다만 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인가. 지금 우리는 무엇에 놀라고 있단 말인가.

<해제하고 협력 얻어야>
「입산금지」령은 서울시경찰국장으로부터 내렸다고 전하고 있고 경찰에서는 반드시 등산 못한다는 것이 아니니 경찰에서 무슨 증명서를 맡아가라고도 한다. 그리고 수상한 사람이나 수상한 물건을 보면 곧 경찰에 통보해달라고 부탁도 한다.
또 산악회의 증명이 있으면 「입산」 할 수 있다던가? 산악회는 회원에게 회원증은 내 줄 수 있지만 회원 아닌 누구에게 무슨 권한으로 무슨 증명서를 해주라는 것이며 그런 권한은 누구가 산악회에 맡길 수 있다는 것인가. 도대체가 법에 표준을 두지 못한 행정관들의 명령이란 언제나 혼란과 억지가 따르기 쉬운 것이다. 입산금지도 이제 한 달여, 시경찰국 뒤에는 치안국도 있고 그 위에 차관 장관도 있으니 이럭저럭 생각도 있었으리라고 믿는다.
이제는 봄도 때가 왔으니 「입산금지」란 말도 다시 내지 않도록 집어치우고 곱게 깨끗이 봄도 맞이할 겸 간첩색출에 시민의 힘도 보탤 겸 안타깝게 산만 바라보고 있는 시민의 마음을 화창하게 풀어주어야 할 것 아닌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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