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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공권력 좋긴 좋은데 우리 안전과 질서 유지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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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일러스트=강일구]

“접촉사고 현장에 나간 경관이 30대 여성 차주가 상대 차주인 60대에게 마구 욕설을 퍼붓기에 순간 화가 나서 ‘당신, 노인한테 이래도 되느냐’고 호통을 쳤답니다. 이에 이 여성이 경관을 고발했죠. 감찰 결과 정황은 이해됐지만 그 경관에게 계고를 줬습니다.”(감찰부서 경찰관 A)

 “요즘은 경관이 피의자라도 ‘당신’이라고 하면 계고, ‘이 자식’ 했다간 견책을 받는다는 게 거의 감찰의 공식 룰이 되다시피 했죠.”(경찰관 B)

 우리나라 경찰은 친절하다. 피의자가 때리면 맞고, 지구대를 때려 부숴도 발만 동동 구른다. 밤에 범죄신고를 받고 시민들이 깰까 봐 사이렌도 울리지 않고 헛발질하다 다음 날 신고여성이 살해당한 채 발견된 사건(오원춘 사건)도 있었다. 그럼에도 경찰은 친절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112출동 후엔 민원인에게 전화해 경찰관이 친절했는지 확인하고, 사소한 불친절에도 계고와 견책을 날린다. 피의자 혹은 소란행위자들조차 경찰이 불친절하면 욕설을 퍼붓고, 들이받고, 민원·고소·고발에 거리낌이 없다. 이에 경찰관은 차라리 복지부동이 속 편하단다.

 피의자한테 욕먹기는 검찰도 다르지 않다. 법정에서 폭력 혐의 피고인이 검사에게 육두문자를 쓰고, 이에 검사가 맞받아 욕설을 했단다. 3월에 일어났던 일인데 피고인이 “욕설로 모욕을 당했다”며 검사를 고소하는 바람에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한 검사는 “검사에게 욕을 하는 피의자들이 의외로 많다”고 했다. 특히 여검사들한테 반말은 양반이고, 커피 타 오라거나 욕설로 기부터 죽이려는 피의자들도 있단다. 이에 같이 막 나갔다가는 인권유린으로 고소당하고, 민원을 제기하는 통에 견딜 수가 없단다. 공권력이 친절해지고, 인권지킴이로 거듭나면서 피의자들의 인권의식이 날로 높아져서다.

 이렇다 보니 나도 과거엔 백차만 봐도 괜히 가슴이 철렁했는데 이젠 두렵지 않다. 사소한 위법엔 생떼 쓰면 되니 소심하게 법규 안 따져도 되고, 편한 세상이다. 그런데 솔직히 나한테만이 아니라 범죄자한테도 쩔쩔매는 공권력은 좀 켕긴다. 이런 공권력이 내가 피해를 당했을 때 나를 대신해 범죄자에게 제대로 복수해줄 수 있을까? 미국에선 공권력에 대한 도전은 시민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해 즉각 응징한다는데, 우리 공권력은 범죄자에게도 친절하고, 시민들은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참지 않으니…. 생각해보면 내 안전을 위협하는 건 불친절한 경찰이 아니라 질서 파괴자와 범죄자들인데 말이다. 그런데 검사한테 욕한 피고인은 감치명령 받았다는 말도 없고, 검사가 맞받아 욕 한번 했다고 일부 언론까지 나서서 ‘막말 여검사’라고 두들겨 패는 판국이니 공권력이 어떻게 기를 펼 수 있을는지….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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