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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이라는 것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서미트」라는 미국의 「뉴저지」 고을에서 몇 달 동안 하숙하고 있었을 때의 얘기다. 60대의 주인 할머니는 내 손의 결혼 반지를 몹시 신기해했다. 자기 세대의 아는 남자들은 곰곰 생각해봐도 하나도 결혼 반지를 끼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결혼하면 으례 반지 끼는 것을 상식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더니, 이 할머니는 기억을 더듬으며 남자들이 결혼 반지를 끼기 시작한 것은 2차 대전 때부터라고 일러주다. 출정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항구마다 수많은 여인이 송영했으며, 이 자리에서 자기에게 정해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생긴 풍습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한가지 풍습이 20여년 사이에 고정되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 미국의 짧은 역사와 함께 재미있게 여겨졌다.
또 미국에서는 어느 때든 「숙녀 먼전가 미덕으로 알려져 있다. 개척 시절에 처녀지를 개간하는 남자들 사이에 부녀자가 귀중했던 까닭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그것보다도 개척 시절이 끝나고 문명화하고부터 라는 말도 그럴 듯 하다. 지금도 미국의 산악 지방에 가면 남자가 빈손으로 앞장서고 여자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간신히 따라가는 풍습이 남아 있다.
요즘은 상상하기 어려운 야만스런 일이다. 그러나 개척 시대에는 언제 어디서 「인디언」들이 달려들지 모르기 때문에 남자가 총을 겨누고 앞장서고 여자는 짐을 맡아 뒤따라갔다는 것이다. 문명화하고 이러한 경계가 필요 없게 되자 그 반동으로 「숙녀 먼저」의 습성이 생겼다는 설이 그럴듯해 보인다.
아뭏든 그쪽의 세련된 숙녀라면 모든 행동에 특징이 없을 이만큼 자연스럽게 남의 눈에 거슬리지 않도록, 남을 당황하게 만들지 않도록 배려를 하고 산다.
「숙녀 먼저」라지만 동행의 남자가 친구에게 붙들리거나 짐 때문에 너무 떨어지면 슬며시 먼저 문을 열고 나간다. 유학간 우리 여학생들은 흔히 동행이 와서 문을 열어 줄 때까지 줄곧 문 앞에서 총총히 서서 기다리는가 하면, 친절을 베풀어 문을 열어주려는데 자기가 썩 문을 열고 나서서 모처럼의 친절에 모닥불 같은 무안을 끼얹기도 한다. 이런 것은 다 어렸을 때부터 몸에 익힌 습관 때문에 그 나라 습관에 어색하게 되는 것이리라.
집에서 주부로서나 밖에서 손님으로서나 남을 거북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배려는 우리나라 여인들도 배워 둘만한 점이 아닐까 한다. 정원 <과학기술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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