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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키신저와 저우언라이

중앙일보

입력

요즘 중국의 대형은행들이 북한과의 거래중단이라는 전례 없는 금융제제 조치를 취한 것에 대해 분석이 분분하다. 북한의 김정은 제1 비서에 대해 중국 정부의 “레슨용” 분노가 반영되었다고 보기도 하고 중국의 북한문제에 대해 근본 입장이 바뀌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사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태도는 천안 함 폭침을 고비로 점차 달라지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의 기본 정책이 바뀐 것은 아니다. 중국은 북한에 대해서 이념(이데오르기)이나 과거 혈맹의 의리보다 국익을 우선하는 외교를 해 왔다.

중국은 신 중국 건국이후 국익우선을 위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현실정치(realpolitik)가 모든 정책의 기초가 되어 왔다. 중국의 사회주의도 국익을 우선하는 이른바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임을 강조하고 있다.

냉전시대에도 미국과 소련을 제1세계, 미소의 동맹국을 제2세계로, 중국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비동맹의 제3세계(the third world)로 스스로 분류, 외교의 자유(free hand)를 확보한 것도 이러한 현실정치의 일환으로 보인다.

현실정치라고 하면 19세기 후반 힘을 바탕으로 프러시아를 중심으로 주변 열강의 세력을 몰아내고 독일을 통일시킨 철혈(鐵血)재상 비스마르크(1815-1898)와 20세기 전반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헨리 키신저(1923- ) 박사를 생각할 수 있다. 키신저 박사는 미국 외교가 오랜 냉전의 이데오르기에 파 묻혀 조금도 진전이 없는 이상주의(Wilsonianism)에 매몰되어 있음을 답답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닉슨 대통령에게 소련과 화해(데땅트)를 하고 중국과의 수교를 건의했다.

키신저 박사는 중국도 현실정치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 저우언라이(周恩來)(1898-1976) 총리가 있음을 간파하였다. 1971년 키신저는 2차례나 걸쳐 비밀리 저우언라이를 만나고 다음 해에는 25년간의 죽(竹)의 장막을 걷어 내는 닉슨의 중국 방문을 이루어 낸다.

북한은 중국의 우정 있는 설득(friendly persuasion)과 권고를 무시하고 기어이 미사일 발사와 3차 핵실험을 강행하였다. 북한은 이제 노골적으로 “핵보유국”으로 인정해 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 중국은 지금까지 북한의 체제안정을 최우선시하여 북한을 감싼 정책이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제 북한이 핵을 내세워 오만 방자해지는 것을 볼 때 북한의 비핵화가 중국의 국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급선무인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핵위협에 놓인 세계는 42년 전 저우언라이 총리와 짝을 이룬 키신저 박사에게 길을 물어야 할 판이다. 이번 5월 27일은 키신저 박사의 탄생 90주년이 되는 날이다.

유주열 전 베이징 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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