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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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동창들의 모임장소로 H한식점이 정해졌다. 시간은 상오11시.
오랜만의 외출이라 마음이 흥겨웠다. 현관을 들어서서 3층으로 가는 층계를 막 오르려는 찰나였다.
『못올라 가십니다!』「웨이터」가 두팔을 벌리고 막아선다.
어리둥절해서 잠시말문이 막혔다.
『아직 남자 손님이 한분도 안올라가서 그렇습니다』「웨이터」는 태연히 말한다. 여자가 먼저 올라가면 그날 영업에 지장이 있다는 것이다.
별수없이 먼저 도착한 친구들과 함께 아래층에서 자리를잡고 앉아 기다렸다.
12시를 10분 남겨놓고 한 부인이 들어섰다. 그 부인은 털옷으로 중무장을 한 너댓살짜리꼬마를 앞세우고 있었다.
『어서 옵쇼!』하고「웨이터」가 허리를 구부리고 소리쳤다.
꼬마손님은 아장아장 층계를 오르고, 그 엄마가 뒤따랐다.
그제서야 「웨이터」가 우리쪽을 향해 『모두들 올라가세요』라고 통행금지령을 해제했다.
먼저 올라가는 부인을 뒤쫓아가 물었다.
『이애는 남자예요?』
『고추예요.』부인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박영애·주부·서울 종로구 내수동70와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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