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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496) 64칸 보드게임 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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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강기헌 기자

“미국에 진출해 체스가 누리는 만큼의 인기를 바둑이 얻을 수 있도록 해보고 싶다.” 지난 2월 잠정 은퇴를 선언한 이세돌 9단의 말입니다. 그가 부러워할 만큼 체스의 인기는 세계적입니다. 국제체스연맹에 등록된 선수만 6억 명에 이릅니다. 체스엔 어떤 마법이 있는 걸까요. 체스의 이모저모를 살펴봤습니다. 

강기헌 기자

최근엔 국내의 체스 열기도 뜨겁다. 트렌드의 척도가 된다는 서울 강남. 이곳 중학교들이 마련한 방과후 수업 프로그램 중 가장 먼저 정원이 마감되는 게 체스라고 한다. 체스만 가르치는 학원도 등장했다. 미국이나 유럽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 사이에선 체스 공부가 필수가 됐다는 말도 들린다. “유학생활을 하며 말은 못해도 체스는 통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열기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체스 역사와 비교할 때 한국 체스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국내 체스 경기를 관장하는 대한체스연맹이 설립된 건 6년 전. 지난 2007년의 일이다.

지난해 9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체스 그랜드슬램 파이널의 한 장면. 체스 경기를 지켜보기 위해 팬들이 모였다. 스페인 출신 발레조 프란시스코(세계랭킹 53위·왼쪽)와 인도 출신 아난드 비쉬와나탄(세계랭킹 5위·오른쪽). [중앙포토]

4000년 역사의 체스

체스의 발생지는 인도다. 4000년 전 인도에서 시작된 차트랑가(chartranga)라는 보드 게임이 체스의 모태다. 인도인들이 아직도 즐기고 있다는 차트랑가 게임은 코끼리를 탄 병사, 2륜전차를 끄는 기마병, 그리고 보병을 상징하는 기물을 가지고 벌이는 일종의 전쟁놀이다. 보드 게임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이 게임은 불교의 전래와 함께 동아시아 지역에 소개됐다. 훗날 한국에선 민속장기로, 일본에선 ‘쇼기(將棋·일본식 장기)’로 분화됐다. 결론적으로 체스와 장기는 같은 어머니를 둔 남매 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중동으로 전파된 차트랑가는 페르시아제국 시대에 유럽에 소개됐다. 이어 11세기 무렵 유럽 전역으로 전파된다. 차트랑가가 지금의 체스(chess)로 명칭이 바뀐 건 13세기쯤이다. 중세를 거치면서 체스에서 사용하는 기물도 인도식이 아닌 유럽식으로 변화했다. 체스가 유럽을 넘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건 페르시아제국이 만들어 놓은 군사도로가 한몫을 했다. 페르시아제국의 식민지 개척 루트를 따라 체스가 세계 속에 널리 퍼진 것이다. 현재 163개국에서 체스를 즐기고 있다.

국제체스연맹 1924년 설립

체스의 어원은 페르시아어로 왕을 뜻하는 ‘샤(schach)’에서 따왔다. 어원처럼 왕족이나 귀족들이 즐기는 놀이였다. 주로 왕자들에게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전술이나 통치술을 가르치는 데 사용됐다. 현대적 체스의 원형은 유럽에서 다듬어졌다. 16세기 이탈리아 귀족들은 체스 플레이어들을 후원했는데 이 과정을 통해 체스는 귀족들의 문화로 거듭난다. 체스가 귀족들의 놀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난 건 18세기 무렵이다. 유럽 각국에서 일어난 혁명을 통해 시민 세력의 힘이 커지기 시작한 그 무렵이다. 다양한 플레이가 가능한 체스는 대중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커피하우스에서 삼삼오오 모여 체스를 즐기는 문화가 탄생됐고 그즈음에 체스의 전술을 기록한 전문서적들이 출간됐다. 체스 대중화의 시기에 접어든 것이다. 19세기에는 동호회 성격인 체스클럽이 생겨났고 우편을 통한 체스 대국도 시작됐다.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도시 간에 체스 교류전이 이뤄지기도 했다. 19세기 중반에는 유럽 각국에 체스협회가 꾸려졌고, 1924년 국제체스연맹(Federation Internationale De Echecs)이 프랑스에 설립된다.

64칸의 체스보드, 32개의 기물

체스 경기는 국제체스연맹의 규정집에 따른다. 체스 규정이 책 한 권에 담겼다는 건 그 정도로 복잡하다는 얘기다. 연맹 규정에 따르면 체스 경기는 가로·세로 각각 8줄씩 64칸의 격자로 배열된 체스보드에서 두 명의 플레이어가 기물들을 움직여 겨루는 보드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킹·퀸(각 1개), 룩·나이트·비숍(각 2개), 폰(8개) 등 총 16개의 기물을 가지고 경기를 시작한다. 기물 6개의 이동법은 각기 다르다. 기물은 상대방의 기물을 공격하는 데 사용된다. 게임의 목적은 킹(king)을 체크 메이트하는 것. 킹이 상대편 기물에 의해 공격받는 경우를 ‘체크’라고 하는데 체크 메이트는 킹의 탈출법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체크된 경우에는 킹을 공격범위에서 벗어나게 하는 이동만 허용된다. 체스에선 체크 메이트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기권(resign)을 해도 승리한다. 바둑에 비해 경우의 수가 적어 무승부로 끝나는 경기도 많다. 게임 과정은 오프닝·미들게임·엔드게임으로 나뉜다.

세계랭킹 1위의 레이팅은 2868

1997년 5월 뉴욕에서 열린 인간 대 컴퓨터 간 체스대회. 경기에 앞서 가리 카스파로프(오른쪽)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있다. 왼쪽은 IBM 수퍼컴퓨터 딥블루의 개발자 슈핑슝 박사. [중앙포토]

국제체스연맹(fide.com)은 매달 세계랭킹 1위부터 100위까지를 발표한다. 선수 명단은 홈페이지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바둑·장기에선 아직까지 공인된 랭킹제가 도입되지 못했다. 한·중·일 3개국 출신 선수들이 독식하는 바둑과 달리 체스 세계랭킹 100위엔 영국·러시아·중국·이스라엘·폴란드 등 출신 국가가 다양하다. 안타깝게도 100위권 선수 중 한국 출신은 없다. 5월 현재 체스 세계랭킹 1위는 노르웨이 출신 마그누스 칼센(23)이다. 칼센은 2009년 18세 나이로 최연소 체스 세계랭킹에 올라 주목을 받았다.

 국제체스연맹은 세계랭킹을 정리하기 위해 레이팅(rating) 점수를 도입하고 있다. 체스에서 사용하는 레이팅은 ELO 레이팅이라고 부르는데 헝가리 태생 미국인 아르파드 엘로 박사가 창안한 복잡한 계산법에서 따온 것이다. 쉽게 말해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 승리했을 때는 점수가 많이 올라가고, 상대적으로 약한 상대에게 승리했을 때는 점수가 적게 올라가도록 고안됐다. 현 세계랭킹 1위 칼센의 레이팅은 2868이다. 참고로 국제축구연맹(FIFA)이 발표하는 랭킹 순위는 ELO 랭킹 순위를 축구 경기에 적합하게 수정한 것이다.

러시아 출신 체스 천재 … 19년간 세계 1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체스 플레이어는 러시아 출신인 가리 카스파로프(50)다. 1986년 세계랭킹 1위에 등극한 그는 2005년 은퇴할 당시까지 세계랭킹 1위를 고수했다. 무려 19년 동안의 ‘장기 집권’이다. 카스파로프는 신비스럽고 직관적인 수(手)싸움과 통찰력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의 수많은 대국 중 가장 주목을 받은 건 IBM의 수퍼컴퓨터 ‘딥블루’와의 대결이었다. 96년 대결에선 카스파로프가 3승2무1패로 딥블루를 물리쳤다. 하지만 97년 대국에선 1승3무2패로 컴퓨터에 패했다. 중국 출신 탄 박사를 팀장으로 한 IBM 딥블루팀은 수퍼컴퓨터에 지난 100년간 행해진 주요 체스 대국을 입력시켰다. 딥블루는 초당 2억 가지의 행마법을 검토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체스에서 얻은 인기를 등에 업은 카스파로프는 2008년 열린 러시아 대선에 뛰어들었다가 중도에 포기했다.

◆ 대표적인 체스 규칙 10가지

1 한 번 만진 기물은 반드시 움직여야 한다. (터치 & 무브)

2 움직인 기물이 체스판 2칸에 걸쳐 있을 때는 “자두브(J’addube·프랑스어로 말을 정돈한다는 뜻)”라고 말하고 수정해야 한다.

3 기물을 움직인 다음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일 수 있다.

4 공식 경기에선 커피나 물을 제외한 모든 음식이 금지된다.

5 항상 백색 기물이 먼저 공격한다. (흑·백은 제비 뽑기로 결정)

6 기물로 상대방의 킹을 공격할 때 “체크”라고 꼭 말할 필요는 없다.

7 킹이 피할 곳이 없으면 게임이 끝난다. (체크메이트)

8 상대방이나 자신의 기물을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할 때는 무승부가 된다.

9 체스판의 가로 8칸은 랭크(rank), 세로 8줄은 파일(file)이라고 읽는다.

10 국제 대회 경기 시간은 기본 90분이다.

◆ 기물의 유례 및 행마법

폰 (pawn) 18세기 프랑스 체스마스터 필리도는 “폰은 체스의 영혼이다”고 했다. 체스 기물 중 절반을 차지하는 폰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아래는 넓고 머리가 둥근 것이 특징이다. 앞으로 한 칸씩 이동할 수 있다. 다만 처음에는 두 칸 전진할 수 있다. 상대방의 기물을 잡을 때는 반드시 대각선에 있는 적만 잡아야 한다. 말을 뛰어넘을 수 없다. 체스판의 마지막 칸에 도착하면 킹과 폰을 제외한 다른 기물로 바꿀 수 있다. 초보자들 간의 대국에선 ‘누가 먼저 폰을 퀸으로 승진시키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린다. 8개가 주어지고 기물점수는 1점이다.

룩 (rook) 성 모양을 하고 있다. ‘룩’이라는 이름은 전차를 뜻하는 고대 아랍어에서 유래했다. 고대 인도의 이륜 전차인 루타(rutha)에서 탄생했다는 설도 있다. 장기로 치자면 차(車)에 해당한다. 전·후·좌·우로 원하는 만큼 움직일 수 있다. 말을 뛰어넘을 순 없다. 2개가 주어지고, 기물점수는 4.5점 또는 5점이다.

나이트 (knight) 고대 인도에선 기병을 의미했다. 이후 중세 유럽을 거치면서 기사를 뜻하게 됐다. 기물은 말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장기의 마(馬)에 해당하지만 다른 기물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전·후·좌·우 어느 곳이든 한 칸을 전진한 다음 대각선 방향으로 한 칸 나아갈 수 있다. 2개가 주어지고 기물점수는 3점이다. 다른 기물을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기물이자 고대 인도에서 유래된 행마법이 지켜지고 있는 기물이다.

비숍 (bishop) 고대 인도에선 배(船)를 뜻했다. 중세 유럽을 거치면서 주교로 바뀌었다. 기물의 모양은 중세 주교들의 모자를 본뜬 것이다. 대각선 방향으로 원하는 만큼 움직일 수 있다. 다만 말을 뛰어넘을 순 없다. 장거리 기물로 나이트보다 기동성이 좋지만 체스보드의 절반만 움직일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2개가 주어지고 기물점수는 3점이다.

퀸 (queen) 장기의 사(士)에 해당하던 기물이었으나 유럽을 거치면서 퀸으로 변화했다. 킹보다 조금 작은 크기로 여왕이 머리에 쓰는 관에서 유래한 모양을 했다. 체스에서 가장 강력한 기물이다. 가로·세로·대각선으로 원하는 만큼 움직일 수 있다. 다만 다른 기물을 뛰어넘을 순 없다. 1개가 주어지고 기물점수는 9점이다.

킹 (king) 가장 큰 기물로 왕관 모양을 하고 있다. 킹은 절대 죽어서는 안 되며 죽일 수도 없는 신성한 기물이다. 상대방의 킹을 쓰러뜨리는 건 반칙에 해당한다. 정식 경기에서 상대방의 킹을 쓰러뜨릴 경우에는 실격패를 당할 수 있다. 전·후·좌·우·대각선으로 한 칸만 움직일 수 있다. 기물점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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