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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자락, 전통과 현대가 소통하는 곳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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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호 23면

1 제주도 돌과 꽃으로 만든 화단 2 벽면을 장식한 소반과 조각보 전시물 3 조선시대 목공예 전시장 4 현대 조각물을 설치한 정원
5 본태박물관 전경

제주 남서쪽 서귀포시 안덕면. 산방산과 형제섬이 물끄러미 보이는 한라산 자락 중턱에 담백한 회색건물 두 채가 들어섰다. 본태(本態)박물관이다. 고(故)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정주영 명예회장의 4남)의 부인인 이행자(68) 고문이 30여 년간 틈틈이 모아온 보자기ㆍ목기ㆍ공예품 컬렉션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관장은 미술사를 전공한 이 고문의 둘째 며느리 김선희(정문선 현대비앤지스틸 부사장의 부인)씨가 맡았다.

안도 다다오가 지은 제주 본태박물관

‘본래의 고유한 아름다움’이라는 이름의 의미에서도 짐작되듯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이 전통의 아름다움에서 현대적 미감을 찾아낼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것이 이고문의 건립 의도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1995년)에 빛나는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72)가 설계는 물론 드물게 감리까지 맡았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노출 콘크리트 벽면 내부는 덕분에 대리석처럼 반질반질하다. “대지환경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전통과 현대라는 서로 다른 특징을 살렸다”는 것이 안도의 말이다.

입구에 서면 상설관인 제1전시관과 기획전이 열리는 제2전시관으로 가는 양 갈림길이 나온다. 아담한 호수를 왼쪽으로 내려다보면서 제주 흙과 돌, 야생화와 선인장을 형형색색 조각보처럼 꾸민 화단을 지나면 1전시관이다. 조선시대 아녀자들이 규방(閨房·안방)에서 사용하던 자개농ㆍ주칠함ㆍ경대ㆍ반짇고리 등과 선비들의 손때 묻은 서안ㆍ문갑ㆍ관복장ㆍ담뱃대 등이 차례로 관람객을 맞는다.
압권은 2개 층 높이의 바람벽 공간 전면에 층층이 혹은 면면이 쌓아 올려진 소반과 조각보 전시물. 현대미술의 거대한 설치작품을 보는 듯 장엄한 맛을 준다.

박물관 운영위원인 나선화(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위원)씨가 들려주는 에피소드 한 토막. 건물을 마무리한 안도 다다오에게 누군가 물었단다. “어떻게 하면 당신과 같은 안목을 가질 수 있나?” 그가 답했다. “나는 조선시대 목가구를 보면서 공간감과 비례감을 익혔다. 그런데 그게 다 여기 있지 않나?”

6 개관 첫 기획전 ‘조선후기 목동자전’에 나온 ‘목조동자입상’(높이 64cm).

낙산사식 꽃담과 그 아래 흐르는 작은 시냇물
1전시관과 2전시관을 구분하는 것은 낙산사 돌담을 본떠 무형문화재가 정성 들여 꾸민 꽃담과 기다란 인공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물로 이뤄지는 시냇물이다. 그 옆 깊은 골목길을 따라 2전시관으로 들어가면 신발을 벗어야 하는 마루 형태의 공간이 이어진다.

2전시관에서는 4월 27일부터 6월 30일까지 ‘다정불심(多情佛心): 조선후기 목동자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본태박물관의 개관 첫 기획전이다. 조선 후기 제작된 귀여운 표정의 목동자상과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사자상 등 50여 점이 나왔다. 목동자상은 사찰의 명부전이나 나한전에 모셔졌던 높이 70~90㎝ 안팎의 어린아이 조각. 전시를 기획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조선시대 미술사에서 인체 조각은 찾기 힘든데 이런 목동자상에서 그 사라진 맥락을 찾아 읽는다”고 말했다. 어린이날, 부처님 오신 날까지 고려한 세심함이 느껴진다.

2전시실까지 왔으면 반드시 2층까지 돌아볼 일이다. 하늘이 보이는 유리창에서 햇빛이 들어오는 명상의 공간과 정자처럼 꾸며놓은 ‘방 속의 방’은 상념 많은 관람객의 발길을 기어이 붙들어 주저앉힌다.

마당으로 나오면 첨성대를 절반으로 축소한 모조 첨성대와 흰 공작이 화려한 날개를 펼치는 새 사육장이 있어 어린이를 위한 공간으로도 제격이다. 은빛 스테인리스 스틸과 돌로 만든 ‘Children's Soul’(2012), 빨간 알루미늄으로 만든 ‘Gitane’(2008) 등 현대 조각을 보면 조선시대에서 21세기로 비로소 돌아온 듯한 느낌을 준다. 최고급 음향시설과 영상장비를 갖추고 있는 뮤직홀과 카페도 있다.

김선희 관장은 “할아버지와 손녀가, 제주도민과 관광객이 같이 이야기하고 소통할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18일 오후 3시엔 ‘조선 후기 목동자 양식의 변천과정’을 주제로 김희경 박사(명지대)의 강연이 마련돼 있다. 입장료 1만원. 문의 064-792-8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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