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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계산기 두드리며 하는 머리싸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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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호 26면

저자: 유르겐 브라우어, 후버트 판 투일 역자: 채인택 출판사: 황소자리 가격: 3만7000원

창조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쓰이지만 이 책이야말로 ‘창조적’이다. 군사 역사를 경제학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신선함이라니. 미국 역사·경제학계의 저명한 교수들인 두 저자는 지난 1000년간 벌어졌던 전쟁사 중 6개를 골라 현대 경제이론에 적용시킨다. 비용편익, 정보 불균형, 한계수확체감의 법칙, 자본과 노동의 대체 등 기억이 가물가물한 용어들이 전쟁사에 투입되는데, 머리가 좀 지끈거리기는 해도 완독에 대한 도전의식을 부른다. 전쟁이란 결국 비용 대비 효과가 가장 유리한 경우의 수를 따지는 머리싸움이란 전제가 꽤 흥미로워서다.

『성, 전쟁 그리고 핵폭탄』

중세의 성채 건설을 예로 들어보자. 일반적 시각에선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왕의 전 재산을 투입한 것도 모자라 국민들에게 모질게 세금을 징수하면서까지 꼭 지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지만 경제학의 관점에서 이는 ‘기회비용’의 측면에서 탁월한 선택이었다. 왕조와 영토를 지켜내는 일이 전투력의 성과에 달려 있던 당시 최선의 방어는 곧 최고의 승리 요건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채가 있으면 들판에서 전투를 치르는 것보다 돈도 적게 들고 상비군도 유지하기 편했다.

30년 전쟁부터 프랑스혁명 발발 전까지, 수많은 전쟁에서도 셈법은 그대로 이어졌다. 프리드리히2세와 나폴레옹, 말보로 공작 등 세기의 지도자들조차 ‘비용 대비 편익’을 세세히 따졌다. 특히 나폴레옹은 확률과 산술의 신봉자였다. 그는 자신의 군대가 공격 시점에서 더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전에는 군사를 움직이지 않았다. 전쟁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그 시대에 혹시 모를 패배는 승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폴레옹은 1806년 제3차 대 프랑스 동맹전쟁 중 “전쟁에서 계산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런 관점에서 책을 읽다 보면 북한의 핵 위기 조장 역시 조금 이해가 된다. 보통 사람이라면 핵무기 개발에 쓰는 돈이 헛되게 느껴질 터다. 쏴도 안 쏴도 손해가 날 바엔 그 돈으로 공장을 지어 경제력을 높이는 게 나아 보인다. 하지만 저자들의 분석은 다르다. 핵 개발이야말로 궁지에 몰린 약소국이 강대국에 목소리를 내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는 것. 그냥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꽤 이문이 남는 장사라며 ‘대체의 법칙(한계생산력균등의 법칙)’을 꺼내 든다. 이미 60여 년 전 프랑스가 한 ‘핵 장사’를 예로 들면서 말이다. 1950년~60년대에 걸쳐 식민지전쟁에서 연전연패한 프랑스는 여전히 강대국의 지위를 누리기 원하면서도 그럴 역량은 없었다. 재래식 전력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드골은 핵을 개발해 배치했고, 결국 1960년 2월 13일 알제리 르간에서 60㏏의 원자폭탄을 터뜨렸다. 이것은 냉전시대의 양 축인 미국과 소련을 혼란에 빠뜨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프랑스는 이후 미국과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정치적·경제적 부흥을 도모했다.

책은 이외에도 미국 남북전쟁을 통해 ‘정보 비대칭’이 전선을 어떻게 바꿔놓는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독일에 퍼부었던 전략 폭격을 ‘한계수확체감의 법칙’ 아래 재점검한다. 이처럼 인류 전쟁사에서 경제학의 고리를 찾아나선 작업은 무려 10년이 넘게 걸렸다. 500쪽이 넘는 분량에 주석만 66쪽에 달한다. 첫 장을 넘어가기가 부담스러울 수 있겠지만 걱정 마시라. 6개의 전쟁사 중 관심 있는 부분만 골라 읽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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