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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시대의 남과 북 한국·인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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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수카르노 독재 꺾은 불굴의 언론인 동서센터·타임지 후원으로 미 시찰
태평양의 남과 북-「극동」과 「남양」은 아득하게 멀었었다. 한울 안이면서도 「아시아」 적 정체 속에 갇혀 맥박도 숨결도 멎어있었던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새 태평양시대의 남과 북-.
『67년이 「아시아」의 새 물결을 가름했다면 68년은 태평양시대의 기점과 종점을 두 축으로 굳히는 해가 되겠지요. 두 물결이 맞닿아 출렁거리는 날, 극동이니 동남아니 달팽이 껍질 같은 울타리는 의미가 없어질 겁니다』
인도양을 분계로 태평양이동에 세계의 이목이 쏠려있다고 말하는 인니 언론인「몽타르·루비스」씨는 동서의 접합 점 「하와이」에서 기자와 자리를 맞댔다. 「수카르노」의 독재, 좌경, 부패에 가냘픈 붓대로 맞서 싸우기 20년. 그중 근10년을 영어에서 보낸 「루비스」씨는 제1회 「막사이사이」상부재수상으로 너무 잘 알려진 언론인이다.

<한국 전 땐 초산까지>
『한국은 여러모로 「인도네시아」의 선배이다. 공산당을 물리친 솜씨나, 이승만 독재를 넘어뜨리고 「데모」의 회오리를 겪고 군사정권 그리고 경제성장의 길을 걷는 모습을 우리는 부지런히 뒤따르고 있는 기분』이라고 「루비스」씨는 우스캐 말로 서두를 꺼냈다.
한국전 때 종군한 그는 수도사단을 따라 밀양을 거쳐 초산까지 국군을 뒤따랐었다. 『한국의 추위는 정말 매서웠습니다. 「오버」를 입고 덜덜 떨며 미군담요를 뒤집어쓰고 다녔습니다』는 그였다.

<수하르토는 거북이>
-「수하르토」장군 정부의 채점표는?
『거북이처럼 서행이나 옳은 방향을 가고있다고 봐요.「수카르노」가 불러 놓고 간 빚이 25억 「달러」인데 그중20억 「달러」가 소련 빚입니다. 하지만 매년 1천%를 치솟던 「인플레」가 65년엔 6백50%, 지금은80%까지 떨어지고 있습니다. 군정의 성격은 어쩔 수 없지만 후진국의 최후의 세력이 군이므로 기대를 걸어 보는 것이지요』
45년 해방과 함께 당시 「안타라」 통신사장「마리오」씨의 권유로 언론계에 투신한 「루비스」씨는 「수카르노」가 눈의 가시처럼 여겼으리라고 믿을만한 독종(?) 티는 물론 오랜 옥고의 전상 같은 구김살도 없이 해맑은 표정이다.
『후진국의 군사정권이 환골탈태하면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있으나 지금의 인니는 마치 4·19와 5·16이 동시에 밀어닥친 것같이 혼돈 속에 빠져있습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비동맹·중립」견지>
- 「인도네시아」와 앞으로의 대미전망은?
『적어도 친 미일유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수카르노」의 실패가 중공과의 지나친 결탁이었으므로 인니의 외교는 비동맹·중립노선을 걸어야 할 줄 안다』
-중공과의 외교관계는 어떻게 보는가?
『현재 중공과는 외교동결상태에 있다. 다시 외교가 열릴 것으로 보며 내 개인의견으로는 지상의 어떤 나라와도 외교관계를 맺어야한다고 본다. 「수카르노」의 구질서를 씻고 신질서가 쫓아야 할 일은 지나친 우선회와 중공견제라고 본다.
반제, 반 식민의 「자카르타」= 「하노이」=북경=평양 구축을 부수는 길도 이길 뿐이다』
65년9월 공산혁명이 불발탄이 된 이래 중공은 『인니의 신질서가 「파쇼」전제자』라고 비난하지만 「인도네시아」의 2백70만 화교들에 대한 관심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화교가 경제권장악>
-중국인의 장래는- 인종박해라고 보지 않는가?
『중국인을 3분 할 수 있는데 중공 계가 약20만, 인니에 귀화한 중국인이 1백10만여 명, 그리고 나머지 l백만 명 여는 무국적이다. 그중 중공 계와 무국적 중국인이 인니 경제의 80%를 쥐고있으므로 문제는 심각하다. 공산혁명이 실패로 끝난 이후 10만 명 정도가 중공 또는 제3국으로 떠나갔지만 그들의 기술, 조직, 경험, 자본이 갑자기 마비되면 인니는 더욱 큰 혼란에 빠질 것이므로 정부에서도 실리적이고 인도적으로 다루고 있다』

<옥중일기 묶어 출판>
영어 속에 갇혀 저항할 수 없었을 때 「자카르타의 황혼」을 내어 실제의 「테마」를 「픽션」으로 다뤄 「수카르노」의 부패상을 파헤쳤던 「루비스」씨는 출옥 4년이 됐지만 지금껏 백의종군하는 기분이라는 것. 그래서 이번엔 감옥 속에서 쓴 일기를 출판했다는 것이다. -10년 가까이 옥고를 치른 것은 세상에 잘 알려졌지만 감옥생활이 어떠했던 지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4년 반은 나의 집에 연금 됐었고 4년 반은 동부 「자바」의 고도에 있는 감옥에 투옥됐었다. 집에 연금 된 것은 56년이다. 「수카르노」의 부패와 공산당과의 결탁을 파헤치는 연재물의 탓이었다』동서문화교류「센터」와 「타임」지의 후원으로 미국 여행도상인 그는 『 「인도네시아」우선회가 월남에서의 미국의 단호한 태도로 말미암아 가능하게 됐다』는 미국언론의 논조에 대해선 고개를 저으며『오히려 인니가 「수카르노] 체제를 벗어난 것이 미국의 월남정책을 강하게 해줬을 것이다』고 말했다.

<한국수산기술 고대>
그는 미국의 월남정책엔「노·코멘트」.
『1년 외원 액이 7억「달러」인데 1년 월남전비는 3백억 「달러」를 넘어야하는 미국의 입장을 동경할 뿐이다』고만 말했다.
-한국군의 파월은 어떻게 보는가?
『 「인도네시아」가 한국이라면 우리도 파병했을 것이다』라고 한국 입장을 동정하면서 한국과 인니의 경협을 강조했다. 특히 인니 수역의 수산자원은 한국의 부지런한 기술자원을 기다리고있고 고무 목재 유류와 한국의 섬유류는 좋은 교역상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10년 뒤에 뭐가 일어날것인가를 생각하지 말고 10년 뒤에 뭐가 일어날 수 있느냐』를 생각하자고 말하는 「루비스」씨는 『태평양 시대의 금물은 「쇼비니즘」입니다. 동남아 2억5천만이 지역 협력을 한다면 세계에서 3번째 가는 자원지역으로 개발할 수 있다』 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군맹보다 경협 강조>
「수카르노」의 불평등팽창정책으로 구성됐던 「마필인도」 「플랜」이나 「아시아」국가연합, 동남아방위 조약보다는 경제협력에 역점을 둔 SEAN에 관심을 보였다. 「싱가포르」 「말레이지아」 태국 「필리핀」과「인도네시아」가 가입된 이 기구는 현실적인 경제정책을 기조로 「파트너쉽」을 다짐하고 있다. 물론 그는 이러한 「말레이」인종의 결합이 반 중공이 아니라 「프래그머틱」한 경협을 펴는 것이 목적이라고 단언했다.
68년에 새 붓대를 가다듬은 「인도네시아」의 언론인「루비스」씨는 세계 여러 곳에서 내 신문을 돕겠다고 선의를 보여왔지만 「마닐라·타임즈」에서 윤전기를,「말레이지아」의 「스트리트·타임즈」에서 「라이노타이프」2대를 원조 받아 신문을 내겠다고 말했다. <호놀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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