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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년의 회고<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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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한해 동안의 한국의 국내정치는 과열과 흥분에서 시작되어 환멸과 신망으로 끝났다. 「매스컴」의 과잉보도로 인해 연초부터 대통령선거전이 필요이상의 국민적 관심을 끌어놨다. 이러한 경향은 지난 2월 민중·신한 양당이 극적으로 통합하여 신민당으로 발족하고 야당 진영이 갈망하던 대통령후보 단일화가 이루어지면서부터 더 한층 가강 되었다.
4월부터 더 본격화한 대통령 선거전에 있어서 재집권하려는 공화당과 그에 맞선 신민당은 서로를 필사적인 공방전을 벌였다. 유세대결에 시종 한 느낌이 짙은 선거전에서 양당은 각기 청중 끌어 모으기 공작에 혈안이 되었지만, 정책상의 쟁점이란 체계적으로 노출하지 못했다. 국가경제건설에 있어서 공화당은 소득분배의 공정화보다도 생산력증강제일주의의 주장을 내세웠고, 신민당은 생산력증강 보다도 소득분배의 공정을 촉구하는 주장을 내세워 약간의 주목을 끌었다.
그렇지만, 양당은 함께 그런 기본적인 주장을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정책체계를 제시하지 못했고, 또 소득분배의 공정과 생산력의 증강은 결코 이율배반적인 것이 아니므로 이러한 정책논쟁은 공소 불모 한 것이 되고 말았다.
5월3일 대통령선거가 확정되자 곧 국회의원 총선 전이 벌어졌다. 국회의원선거전에는 군소 정당에서도 많은 입후보자를 내세웠지만, 이 선거 역시 양대 정당으로 부각된 공화·신민 간의 대결로 압축되었다. 공화당은 원내 안정세력 구축을, 그리고 신민당은 집권세력의 독선 견제를 각각 호소하여 대중의 지지를 얻고자했다. 선거전이 중반에 들어서면서부터 이상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유권자에 대한 전례 없이 치열하고 더러운 금품공세, 그리고 주로 여당입후보자들에 의한 화려한 지방공약과 이에 대한 정부의 행정지원 다짐 등은 선거를 극도로 부패·타락시켰다. 그뿐더러 유령 유권자의 대량조작과 대리투표의 행사 등은 이 선거에 많은 부정과 협잡이 깃들였음을 단적으로 시사해주었다.

<정국경새>
6·8총선이 끝나자 이들 부정· 부패선거로 규탄하는 소리가 높아졌다. 공화당의 승리가 너무도 엄청나게 큰 것인데다가, 몇몇 지구에서 선거의 부정·부패 장이 여실히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가두에 뛰어나와 규탄「데모」를 벌였는데 정부· 여당은 이를 실력으로 분쇄하는 일방선거에 일부부정이 있었음을 시인하고 몇몇 당선자를. 제명시켜 민심을 무마하고자 했다. 이에 대해 신민당 측은 총선이 전면 부정이었음을 주장하고 전면재선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만성적인 정국불안이 조성되었는데 극도의 상호불신은 양당간에 대화의 길마저 두절시켰다.
공화당은 정국수습을 위해 한편으로는 대야협상을 시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단독으로 국회를 운영할 자세를 가다듬었다. 협상시도가 모두 좌절되자 10월에 공화당은 「10·5구락부」라는 위성교섭단체를 만들어 가지고 단독으로 국회를 열어 추경예산안을 통과시키고 국정감사를 실시했다. 야당의원들이 모두 등록을 거부한가운데 일린 단독국회는 그 운영형식의 여하를 불문하고 위헌적인 것인데 이 변칙국회야말로 여·야의 의석 차가 너무도 큰 7대국회의 앞날을 상징하는 것일는지 모른다.
공화당 일당국회의 운영은 신민당의 등록거부 전술이 주효할 수 없음을 잘 증명해 주었다. 도시 신민당이 총선의 전면무효, 전반적인 재선실시라는 혁면적인 주장을 내세우면서 이를 관철키 위해 의원등록 거부라는 미온적인 수법을 쓴 것부터가 잘못이었던 것이다. 11월에 들어 양당은 의회부재를 개탄하여 협상에 의한 국회정상화를 요구하는 여론에 외면할 수가 없어 전권대표자 회의라는 것을 열었다. 여·야 협상은 짧은 시일 내에 정치적 타결을 이루어 국회정상화에 의한 정국수습의 건을 터놓았다. 소위 협상의정서는 원내에서 6·8선거의 부정을 규탄하고 부정재발을 막기 위한 입법보강을 한다는 조건부로 신민당이 동원을 약속한 것이다.

<일당국회>
신민당 등원 후에도 공화당은 다수의 위력을 믿어 소수당의 존재와 의사를 거의 무시했기 때문에 국회운영은 「사실상 일당국회의 연장」에 지나지 않게 됐다. 협상타결 후 공화당만의 국회에 의한 세법개정, 양당국회 하에서의 새해예산안 부문별심사종결의 날치기 통과, 그리고 특조위법 제정작업의 지지부진 등은 신민당으로 하여금 10일간의 농성투쟁을 벌이게 했다.
공화당은 이 소수당의 절망적인 항거를 설득과 타협으로 해소시킬 생각을 하지 않고 또다시 실력으로 분쇄해버릴 기회를 엿보다가 예결위에서나 국회본회의에서도 변칙적인 수법으로 새해예산안의 일방적 통과를 강행하고 말았다. 날치기통과, 여당만에 의한 강행채결 등은 제 아무리 합법을 가강한 것이라 하더라도 의회정치의 본질적 요구를 짓밟는 것이요, 이점 변칙통과의 되풀이는 대의민주정치의 장송이라 볼 수 있다.
묻느니, 공화당은 일당국회를 양당국회로 위장시키기만 위해서 협상을 벌여 야당을 국회에 끌어들였던가. 특조위법 제정이며 보장입법 언질 등은 단순히 야당을 낚기 위한 미끼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던가. 공화당은 국민 앞에 책임 있는 답변을 해야한다. 야당이 명목만의 존재가치를 지닌 의회정치는 벌써 의회정치가 아닌 것이요, 헌법이 주로 이론상의 가치만 향유하는 정치는 벌써 헌법정치가 아닌 것이다.
정부·여당이 민주정치를 지향하라고 하면 소속당의 존재와 의사를 존중하고 설득·호양·안협에 의한 의회운영의 전통을 확립해야 할 것이요, 국회를 국정의 「액세서리」로 전락시킬 것이 아니라, 그 심장부의 지위에 올려놓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야당이 있으나마나한 존재로 취급당하는 것은 곧 국회부재를 의미하는 것이요, 국회부재는 곧 국민부재를 의미한다. 어둡기만 했던 정미년의 정치를 회고하면서 집권당의 맹성을 촉구하는 소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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