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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함무라비 법이라도 복원하든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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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예전에 시내 백화점에 갔다가 명품관 주차장 입구로 잘못 들어간 적이 있다. 이때 남자 직원이 내 차를 세우더니 물었다. “정말 여기 오셨어요?” 내 낡은 국산 승용차가 딱 걸린 모양이었다. 순간 괜히 울컥해서 “네, 여기 왔어요”라고 고집을 부리며 번쩍이는 수입 승용차들 사이에 기어이 주차했다. 그리고 나올 때 주차비 1만원을 내고서야 비로소 후회했다. ‘성질 한 번 참았으면 애 좋아하는 치킨이 한 마리인데…’.

 며칠 전 한 대기업 임원이 식사 중에 자기 아내한테서 온 문자를 보여줬다. 식당에선 주는 대로 먹고, 행동 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항상 처자식을 생각하라’는 경고문으로 끝을 맺었다. 한 대기업 간부에게선 이런 얘기도 들었다.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동료들과 음식을 주문했는데, 한 동료의 음식이 잘못 나왔단다. 그런데 다른 동료들이 동시에 그에게 한마디 하더란다. “그냥 먹어.” 결국 그는 아무 말 못하고 잘못 나온 음식을 먹었다는 것이다. 요즘 대기업 주변엔 이런 일화가 넘친다. ‘포스코 라면 상무’ 사건 이후 벌어지는 광경이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다 보니 ‘울컥’ 관리 잘못하면 늘 비용을 치러야 한다. 혼자 울컥해 ‘김여사 짓’을 하고 낸 1만원은 지금 생각하면 참 관대한 대가였다. 요즘은 성질 잘못 부렸다간 패가망신한다. 비행기에서 진상 짓을 한 ‘라면 상무’는 회사를 떠났다. 한 빵집 회장은 호텔에서 주차 시비를 하다 직원을 때린 일이 알려져 거래처에서 납품정지를 당하고 회사는 폐업해 죄 없는 근로자들만 거리로 내몰리게 됐다. 남양유업 영업사원도 대리점주에게 폭언으로 강매한 통화 내용이 SNS로 퍼져 직장을 떠났다. 회사도 강매 혐의로 수사받고 있으니 그도 회사일 하느라 벌어진 일일 게다. 어쨌든 이들은 돼먹지 않은 ‘갑의 횡포’가 만연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여서 사회적 공분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폭언·주먹 한 방에 ‘생업을 잃는 벌’은 적정한 것일까? 요즘 SNS와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는 대중의 소위 ‘갑 가해자’에 대한 응징은, 한마디로 ‘걸리면 다 죽는다’. 무한 응징 시대다. 이는 일견 통쾌하지만 그 여파로 오프라인 세상엔 ‘조지 오웰의 세계’와 같은 공포와 불신이 번지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이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대등 보복의 원칙을 정한 ‘함무라비 법’이라도 복원하고 싶은 심정이 된다. 자기 집안 일원에게 해를 입히면 상대 집안은 몰살시키는 등의 무한 보복과 분노가 지배했던 원시시대에 나온 법인데도 이제 보니 작금의 세태보다 훨씬 ‘선진적’이어서다. 이런 마당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식 관용까지 바라기엔 갈 길이 너무 머니….

글=양선희 논설위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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