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밖에서 기자회견 자제하라" 재판장, 민변 변호사들에게 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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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균 판사

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인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외부에서 기자회견 등을 열자 해당 재판부가 “자제하지 않으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6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부장 이범균) 심리로 열린 탈북화교 출신 서울시 공무원 유모(33)씨에 대한 공판 준비기일에서다. 유씨는 탈북자 200여 명의 신상정보를 세 차례에 걸쳐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 전달한 혐의(국보법 위반)로 구속기소됐다.

 이날 재판에서 이 부장판사는 “피고인의 변호인들이 최근 (법정 밖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이는 재판에 부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적절치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식으로 자제하길 당부한다”며 “이런 시도가 계속되면 재판부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덧붙였다.

 유씨를 변호하는 민변 소속 장경욱(45)·양승봉(44)·김용민(37) 변호사 등이 지난달 27일 개최한 ‘국가정보원 탈북 화교남매 간첩조작사건 여동생 긴급기자회견’을 지칭한 것이다. 당시 장 변호사 등은 유씨 여동생(26)이 국정원 조사 과정에서 오빠를 간첩으로 말하도록 회유·협박당했다고 주장한 뒤 “유씨의 간첩사건은 국정원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5일에도 성명서를 내고 “국정원에서 유씨 여동생을 국외로 강제 출국시키려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의 경고에 대해 장 변호사는 “국정원이 유씨 여동생의 법정 증언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협박하고 있다”며 “‘페어플레이’를 바라는 심정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해명했다. 검찰 측 이시원(41) 검사는 “유씨 여동생 조사 과정에서 회유·협박이 있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변호인들과 유씨 여동생이 법정에서 진실을 말할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변호인들은 이른바 ‘왕재산’ 사건이나 이정애(탈북 여간첩) 사건의 피고인들에게도 ‘사실대로 말하지 말라’고 회유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재판부는 “여긴 법정이지 시장 싸움판이 아니다. 감정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휴정 중에도 ‘장외전’은 계속됐다. 장 변호사는 이 검사에게 “사과하라. 왕재산·이정애 사건을 자꾸 언급하면 나도 이 검사 사건을 다른 법정마다 들고 다니면서 언급하겠다”고 말했다. 이 검사는 “변호사답게 변론은 법정에서 하라”고 맞받았다.

 재판부는 “양측이 서로 (유씨 여동생을) 회유했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재판부로선 최대한 원칙대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며 “유씨 여동생을 오는 9일 열리는 유씨 첫 재판의 증인으로 채택해 진술 번복 경위와 진술 과정에 문제점이 있었는지 등을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에는 법정 심리 중인 사건에 대해 외부에서 발표하거나 토론하는 것을 재판부가 금지하는 ‘보도 금지령(gag order)’이 있으나 국내엔 별도의 규정이 없다. 

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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