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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속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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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인간이 이루어놓은 일치고 『순풍에 돛단듯이』되는 것은 별로 없다. 큰 일은 안락속에서 보다는 역경속에서 더많이 성취된다. 섬광은 실로 암담할 때 눈이 부시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시베리아의 유형지에서 백야를 집필했다. 그는 만성적인 위경련환자였다. 게다가 갈갗을 찢는 듯한 치질의 고통, 어깨를 누르는 신경통, 두다리를 비트는 족쇄, 시베리아의 그 무서운 혹한을 견디어 내야했다. 그의 명작들은 피와 눈물과 고통으로 씌어진 것이다.
악성 베토벤은 빈에 살고 있을 때 25년동안에 무려 30차례나 이사를 했다. 돈이 없으니 그처럼 쫒겨 다닐 수 밖에 없었다. 구두밑창에 구멍이 뚫려 외출도 못하는 날이 하도 많았다. 악보출판사는 빚돈대신 그에게서 악보를 받았다.
26살 때 그의 비극적인 귓병은 시작되었다. 귀가 밝을 때 작곡된 작품은 그의 수많은 명작중에서도 도무지 세 개의 삼중소뿐이다. 베토벤의 전작품은 귀머거리가 된후의 것들이다. 그의 귀속에서는 평생을 두고 밤낮으로 머리를 찌르는 소음이 떠나질 않았다.
『때때로 나는 조물주가 만드신 물건중에서 가장 비참하게 만들어진 존재라고 생각되네.』베토벤의 산한문엔 이런 비통한 구절도 보인다.
1824년 5월7일 그의 환희(제9교향곡)가 연주될 때, 청중들은 일제히 일어나 환호성을 올리고 모자를 흔들며 박수를 보냈다. 그때도 베토벤은 영문을 모르고 한눈을 팔고 있었다. 그의 인간보는 이처럼 눈물 겨운 이야기들 뿐이다.
우리나라의 어느 사학가는 옥중에서 근세사의 거필을 집필했다. 우리말 큰사전도 한글학자들이 이제의 옥고를 치르면서 편찬한 것이다.
윤이상씨가 최근 교도소에서 오페라 나비의 꿈을 작곡하고 있다는 소식은 더없이 흐뭇한 화제이다. 그 작품은 내년 3월 서독 본 시립오페라좌에서 연주될 것이다.
엄동속에 잠든나비는 무엇을 꿈꿀까. 윤씨는 장자의 사상에 탐익해있다고 한다.
지금 한예술가의 역경에 값싼 동정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인간에 있어서 안락은 죽어가는 과정이며 고통은 살아가는 과정이라는 교훈을 감동있게 새기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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