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 10년 만에 민주당 주류 자리서 밀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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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권력 지도가 확 바뀌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지원을 받던 열린우리당(민주당 전신) 창당 이후 10년 만이다. 그동안 민주당의 핵심은 친노무현 세력이었다. 친노의 지원을 받는 ‘486(40대·1980년대 학번·1960년대 출생) 정치인과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주변을 에워싸는 구조였다. 그러나 5·4 전당대회에서 비주류 수장인 김한길 대표 체제가 구축되면서 지난 10년간 당을 이끌었던 지도부의 컬러가 바뀌었다. 4명의 최고위원엔 신경민·조경태·양승조·우원식 의원이 선출됐다.

 2003년 11월 창당된 열린우리당은 다음해 1월 전당대회에서 당시 친노 2인자이던 정동영 의장을 지도부로 선출했다. 2007년 대선 패배 후 “친노는 폐족”이라는 말까지 등장했지만 다음해 7월 정세균 대표 체제에서 친노는 486 핵심인 안희정 최고위원을 지도부에 입성시켰다. 2010년 손학규 대표 체제에서도 역시 친노가 밀었던 정세균 의원이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하지만 4일 전대는 이런 양상을 바꿔놓았다. 11개월 전인 지난해 6월 전대에서 이해찬 대표에게 0.5%포인트 차이로 밀리며 민주당 선장 자리를 내줬던 김한길 대표는 이번엔 61.7%를 득표해 친노 주류의 대리인으로 나선 이용섭(38.3%) 후보를 20%포인트 이상 격차로 따돌렸다.

 최고위원 면면도 친노와는 거리가 있다. 신경민 최고위원은 범주류로 분류되지만 친노 인사는 아니다. ‘부산 3선’의 조경태 최고위원은 일찌감치 부산 친노와 거리를 두고 독자 행보를 이어 왔다. 양승조 최고위원을 놓곤 안희정 충남지사의 지원설 등이 돌지만, 손학규 대표 시절 비서실장이던 그를 당내 친손학규 세력이 대거 밀었다는 얘기가 정설로 돌고 있다. 우원식 최고위원도 지난해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선대위에서 총무본부장으로 뛰었지만 앞선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선 손학규 후보를 지지했다. 반면 친노의 집중 지원을 받은 윤호중 후보는 최고위원 경선에서 7위로 탈락했다.

 ‘약방에 감초 격’이던 시민단체 인사와 486 운동권 출신도 퇴조했다. 지난해 6월 전대에선 강기정·우상호 최고위원 등 486 의원이 두 명이나 지도부에 입성했다. 2012년 1월 전대에선 ‘혁신과 통합’을 이끌었던 문성근 최고위원이 한명숙 대표에 이은 2인자로 등극했다. 이번엔 아예 최고위원 후보군에 시민단체 출신이 전무했고, 486인 우원식 의원(노원을)도 486 대표성을 부각하기보다는 수도권 지지세를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민주당의 권력 교체에는 지난해 총선·대선의 잇따른 패배에 대한 친노 책임론이 작동했다는 게 중론이다. 경선 과정에서 김한길·이용섭 후보로부터 모두 구애를 받은 수도권 중진 의원은 “공식 지지는 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론 일단 친노는 2선으로 물러나는 게 적절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친노 후퇴의 숨은 요인은 ‘모바일 투표’가 사라진 데도 있다. 지난해 1월과 6월 전대에선 당 바깥의 일반인들에게 모바일 투표를 허용했지만 이번엔 그게 없었다. 대의원 50%, 권리당원 30%, 국민·일반당원·경선참여선거인단 여론조사 20%로만 치러졌다. 결집력 높은 당 바깥의 친노 지지층이 민주당 경선에 뛰어들 여지가 줄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친노무현 세력의 포용과 관리’는 신임 김한길 체제가 풀어야 할 과제다. 김 대표는 경선전 ‘노무현 청와대’에서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의원을 만나 “친노니 비노니 무의미하다. 대표가 되면 모두 껴안겠다”며 통합을 약속했다고 한다. 김 대표가 지명직 최고위원 세 자리와 주요 당직에 ‘적재적소 인사’를 하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경선 과정에서 금 간 친노와 비주류의 갈등이 쉽게 해소될지는 미지수다. 당 밖의 안철수 의원과의 관계 설정은 향후 민주당의 진로에 영향을 미칠 변수다. 김 대표는 4일 대표직 수락 연설에서 “민주당은 안 의원과 혁신에선 경쟁하고, 새 정치 필요성은 공유하니 경쟁하는 동지적 관계”라고 설명했다. 안 의원도 이날 트위터에 “새 지도부 선출을 축하한다”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안 의원 측의 김성식 전 의원은 “누가 대표가 되건 관계가 없다. 민주당에 입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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