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형석씨|임진전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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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형석장군이 쓴 「임진왜란사」상·하권은 1처내빅 「페이지」, 원고지로 1만장의 대저다. 그는 59년 소장으로 퇴역한 때부터 만 8년을 임진전란의 연구에 바쳐왔다.
온화하면서도 엄정한 무인의 기상이 있는 그는 저작과정을 회고하며 열을 올린다. 『이 일을 시작하고나서 나는 정말 민족적 긍지를 가지게 됐어요, 우리민족의 위대한 얼은 가열한 시련과 위기속에서만 나타납니다』임진전란은 조선·명·일본의 국기를 뒤흔들고 동쪽세계의 판도를 바꾼 대 전쟁인데 우리선인들은 끝까지 항쟁했다.
『의병들의 결사적인 투쟁은 전사에 유례를 별로 볼수 없얼만큼 빛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히 우리의 부녀자들의 높은 절개와 도덕성은 죽음까지도 초월한 숭고한 것이 있어요.』
맨주먹으로 칼가진 놈들과 용감하게 싸운 기록들을 조사하면서 좀처럼 눈물을 흘려본 일이 없는 그도 너무나 감격이 벅차올라 여러번 목이 메었다고 한다.
그가 국사를 공부하게된 동기는 민족에 대한 속죄의식이라고 한다. 일군 육사를 나와 중좌까지 승진했던 그는 「수마트라」에서 해방을 맞고 깊은 가책과 뉘우침을 가지게 됐다. 귀국후 우선 우리역사를 공부하려고 서울대학에 입학했다.
다시 국군에 들어가 한국전쟁을 치렀는데 예편을 계기로 본격적올 규장각의 자료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부인과 아들을 죽이고 싸움터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원주 목사 김제갑이나 60여차례의 싸움에 한번도 진일이 없는 하동의 상승장군 정기룡등 충무공말고도 굉장한 사람들이 많았지요. 그렇지만 값싼 「쇼비니즘」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했어요. 적군의 우수성도 올바로 평가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이 군인출신이기 때문에 전사를 쓰기에 좋은 면도이지만, 전사라해도 전쟁만 가지고는 얘기가 안되고 정치·사회·문화전반에 걸친 더 깊은 연구가 있어야한다고 겸양한다. 앞으로의 게획은 병자호란을 공부하는 것. 59세의 노병은 사라지지않고 학문에의 정열에 불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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