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일본] 일본 본토와 문화 다른 오키나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전쟁은 정말 끔찍해. 일본 군인들이 오키나와(沖繩) 사람들에게 그렇게 나쁜 짓을 했는지 처음 알았어."

지난달 29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현 이토만(絲滿)시에 있는 오키나와현 평화기념 자료관 출구에 모여 있던 학생들 사이에서 이런 말들이 들렸다. 학생들은 수학여행을 온 미에(三重)현 도바(鳥羽)시의 도바고교 2년생 2백40여명이었다.

오키나와현 평화기념 자료관은 일제가 20세기에 벌인 전쟁과 미군 통치로 오키나와가 본 피해를 후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자는 취지에서 1975년 설립됐다. 매년 전국에서 50여만명이 찾아온다. 한국인들의 넋을 달래는 위령탑도 있다.

이곳을 찾는 일본인들은 태평양전쟁 당시 오키나와 전투에서 숨진 20만여명 가운데 10만여명이 일반 주민인 데다 일본군에 의해 살해된 주민도 다수라는 사실에 상당히 놀란다.

자료관에는 "미군의 무차별 폭격 외에 일본군의 주민 학살이 각지에서 벌어졌다. 일본군은 오키나와 주민을 스파이로 여겨 고문.학살했다. 주민의 식량을 강탈하고 집단 자결을 강요했다"는 설명과 함께 관련 사진.신문 기사 등이 전시돼 있다.

자료관 홈페이지(peace-museum.pref.okinawa.jp)의 감상문 코너에는 "미군과 달리 일본군은 자신이 살기 위해 민간인을 죽인 점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는 등 일제를 비판하는 내용이 적지 않게 오른다.

오키나와는 1872년 일본에 강제로 편입되기 전까지는 '류큐(琉球)'라는 별도 국가였다. 주민 중에는 본토 사람들에 의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오키나와의 고유 언어인 '호겐'에 대한 박해였다.

40대 후반의 택시 운전사 기얀 가쓰마사(喜屋武勝正)는 "본토 사람들은 호겐을 무조건 나쁘게 생각했고, 오키나와 전투 때는 호겐을 쓰면 미군의 스파이로 간주했다"며 "학창시절 호겐을 쓴다는 이유로 선생님에게 야단맞고 청소 등의 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요즘은 달라져 일부 학교는 호겐을 가르치며, 라디오 방송의 오키나와 전통음악 프로에서는 해설자가 호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일본 정부는 벌써 31년 전에 오키나와 개발청을 따로 설치하는 등 오키나와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해왔다. 그러나 본토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전반적으로 냉담해 보였다. 상처를 주기는 쉽지만 치유하려면 훨씬 많은 세월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오키나와 = 오대영 특파원 <dayyou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