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읽기] 백화점카드·신용카드·통장 아직도 비밀번호 같습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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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1. 할인 판매로 붐비는 A백화점의 구두매장.

손님=얼마죠?

점원=7만원입니다.

손님=백화점카드 되죠?

점원=비밀번호 몇번이시죠?

손님=****입니다.

점원은 매장에서 북적거리는 손님들의 틈바구니를 뚫고 잠시 사라지더니 몇분 후에 영수증을 건넸다. 매장 옆에 카운터가 없기 때문에 손님이 볼 수 없는 곳에서 카드 결제가 이뤄진 것이다. 백화점 비밀번호와 신용카드 비밀번호를 같이 쓰고 있는 이 고객은 찜찜한 생각이 들었지만 "설마 괜찮겠지"하며 백화점을 나왔다.

#2. B은행의 공과금 수납창구.

1월 말 오후 2시라 창구가 매우 혼잡했다. 고객 C씨는 영업점 입구에 마련된 '무인 공과금 수납창구'에 다가섰다. 은행의 안내문에 따라 계좌번호와 비밀번호.전화번호 등을 또박또박 적어 공과금 지로용지와 함께 창구에 올려놓았다.

무인창구 앞을 서성거리는 사람들이 신경쓰였지만 C씨는 "설마 유출되겠나"라고 생각하며 돌아섰다.

C씨가 이 은행에 개설한 급여이체 통장의 비밀번호와 신용카드의 비밀번호는 같다.

#3. 서울시내 D주유소.

자동차에 기름을 넣은 뒤 E씨는 차 창문을 열고 종업원에게 카드를 건넸다. 종업원은 사무실로 달려가더니 한참 후에 매출전표 를 들고 와 서명을 요구한다. E씨는 서명 후 받은 영수증을 습관처럼 주유소의 휴지통에 던져버리고, 직원이 경품으로 건넨 화장지를 건네받았다.

일부 주유소에서 주유 중에 고객의 카드 번호를 복제해 현금을 인출했다는 신문기사가 떠올랐지만 E씨는 "내가 보는 눈앞에서 결제 승인을 받아라"고 말하기 쑥쓰러웠다.

위의 세 장면은 일상 생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킨 지역 농협과 은행의 고객 카드 정보 유출 사건이 벌어지면서 불안해하는 사람이 늘었지만 개개인의 보안의식은 여전히 느슨한 편입니다.

카드 전문가들은 백화점 카드와 신용카드 비밀번호, 은행 통장과 신용카드 비밀번호를 동일하게 사용하는 행위는 과장해 표현하면 '내 돈을 빼가시오'라고 떠들고 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합니다.

카드 위.변조, 도용 등 부정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카드사.가맹점.고객의 삼위일체 노력이 필요합니다. 가맹점이 50만원 이상 신용구매 고객의 서명을 반드시 대조.확인하고, 카드사와 은행이 고객정보 유출이 없도록 내부 단속을 철저히 하는 일 못지않게 고객이 스스로 카드와 비밀번호를 구분해 잘 관리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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