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불·대불·편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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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공화당은 외자도입에 따른 금융질서의 난맥상을 시정하기 위한 건의안을 마련했다고 들린다.
국정감사 자료로서 지난 9월 한달동안에 조사분석한 결과를 토대로한 동건의안은 차관업체에 대한 장기시설융자 편타대출 가불 대불 등 때문에 금융질서가 문란의 극에 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함과 아울러 (1)일반은행의 장기시설자금융자중지 (2)가불 대불 편타대출의 일소 (3)비정상적인 거액대출선의 부동산 주식 재고 등의 공매 (4)외자도입에 있어서의 정치적 압력의 배제 등을 골자로 하는 시정사항을 건의키로 했다.
공화당이 이러한 건의를 하게 되었다는 보도에 접하여 집권당은 그동안 무엇을 해왔으며 이제와서야 비로소 경제정책의 기본적 모순을 지적하게 된 연유를 이해할 수 없다. 누구 때문에 일반은행이 장기시설자금을 계속 융자해왔고 가불 대불 편타가 성행되어 왔는가. 더우기 외자도입에 있어서 정치적 압력을 배제하라고 주장하는데 이르러서는 공화당이 마치 책임없는 국외자처럼 행세하고 있는 것 같이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치적 압력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 것이라고 공화당은 평가하고 있는가.
또한 가불 대불 편타만이 문제라고 보는 것도 피상적인 관찰이다. 가불 대불 편타는 일시적인 계정처리에 불과하다. 오히려 더 근 본적인 병폐는 일반대출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단시일안에 가불 대불 편타가 해결되지 않으면 일반대출로 전환시켜 합리화하는 것이므로 외자도입에 따른 금융문란은 가불 대불 편타 계수만으로 평가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외자도입에 따르는 금융난맥을 일반은행에 국한시키려 하는 것 같은 공화당의 건의안은 사태의 절반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불면일 것이다. 오히려 일반은행이 당면하고 있는 모순보다는 산업은행의 경우가 더 절실하고 시급하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금융질서의 교란을 강요한 것은 외자도입만이 아니다. 외자도입은 교란의 물적 소인에 불과하다. 오히려 이를 가속화시킨 것은 정치에 있는 것이다. 금융기관에 대한 임시조치법으로 금융의 자율성을 박탈했고 한은법을 개정하여 금융의 중립성을 배제한 정치적 과오가 외자도입이라는 물적 소인과 상승작용을 해서 오늘의 혼란이 초래된 것이다. 이아 같이 금융이 권력의 사금고모양 타락되도록 제도화했기 때문에 금융당국자들은 지보행위에 저항할 수 없었으며 불건실한 지보는 필연적으로 가불 대불 편타를 유발시켰던 것이다.
사리의 인과가 이아 같다면 오늘의 금융혼란을 수습하는 길은 단순한 외자도입의 재검토에 있는 것이 아니다. 외자도입의 축소조정 및 엄선과 더불어 정치적 압력을 배제할 수 있는 제도적 보장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공화당의 건의사항은 허물할 데 없이 훌륭한 것이지만 지난 두햇동안 언론계와 학계가 시정할 것을 계속 촉구해온 이 문제를 지금에 이르러서야 허둥지둥 제기하는 무성의를 우리는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이며 이 기회에 금융의 정치적 예속이 얼마나 국민경제를 문란케 하는 가를 집권당인 공화당은 보다 절실하게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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