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과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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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늘은 스물두번째로 맞는「유엔」의날. 「유엔」헌장이 발효됐던 45년10월24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 깃발에 그려져 있는 북극을 중심으로한 세계지도와 양편의「올리브」가지가 상징하고 있듯이「유엔」은 평화를 옹호·추진하는 세계적인 기구이다. 이 기구의 태동은 41년6월12일의 동맹국간선전으로부터라고 지적되어야 하겠거니와 그후 대서양헌장, 연합국선언, 「모스크바」, 「테헤란」회의등을 거쳐 최초의 청사진이 완성한「담버튼·옥스」, 「얄타」회담에 이르러 비로소 햇볕을 보았던 것이다.
당초「유엔」탄생에 관여했던 원가맹국은 51개국, 그랬던 것이 오늘날에는 회원국수 1백22를 헤아릴만큼 방대한 기구로 성장하였다. 흔히「유엔」의 기능은 그가갖는 성격적특수성, 한계성 때문에 권고적성능에 머무를뿐이며 그래서「유엔」은 그런 양적확대에도 불구하고 점차 약체화내지 무용화되고있다는 말을하는 사람을 본다.
그러나 그런 한정성의 부각에도 불구하고「유엔」이 계속 세계평화의 촉매역할을 다해왔고 평화의 조건구축에있어서 실제적인 공헌을 하였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유엔」이 제아무리 일견 실효없는 회의와 투표만을 되풀이한다해도, 그곳에서 양성되는 평화의 압력을 의식못할 수는 없을 것이며 오늘날 인류는 그것에 대신할 유용한 평화기구를 따로이 갖지못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특히 한국의경우는「유엔」이 대한민국 탄생의 모반이 되었었고 또 6·25의 공산침략을 그 집단적 노력으로 배제해 주었다는점, 그리고 통한의 방법과 국가안전문제가 줄곧「유엔」에 위탁되어 왔었다는 점등에서「유엔」과 각별한 관계를 갖는다. 다소의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한국문제가「유엔」에 계류된지도 벌써 20년이 되었다. 그렇게본다면 한국이 특별히 이날을 기념하는 까닭이 무엇인가가 자명해진다. 물론 20년이란 시간의 경과속에서도, 또한 계속적인「유엔」애 의한 관심의표명, 개입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아직「유엔」방식에 의한, 그리고「유엔」방식에 의한, 그리고 「유엔」감시를 통한 통일을 이룩하지도 못했거니와 그에 접근하지도 못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안보리의 5개임이사국이 갖는 거부권때문에『헌장의 의무를 수락하고 또한 이기구에 의해서 그 의무를 이행할 능력 및 의사가있다고 인정』되는 한국은 회원국이될 전망도 못갖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계속통한의 원칙과 방법을「유엔」에 위임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위에서도 본대로「유엔」만이 세계의 항구평화를 향한 인류의 비원을 집결시킨 현존하는 유일한기구이며 한국과「유엔」의 역사적관계가 너무도 정당하고 불가분의것인 때문이라할 것이다.
다만 우리가 이날을 당하여 명심할바는 지금「유엔」에서의 한국문제는 어느틈엔가 본말이 전도되어 통한문제에서 보다는 소청문제같은 절차문제에 그 대부분의 노력이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한국외교의 대종을 이루어야할「유엔」외교가 지나치게 명분적이고 현실도피적인 것이 아니었는지 심각하게 반성해볼 날도 바로 오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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