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 어디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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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001년 봄, 일본 J리그 교토 퍼플상가에 진출한 박지성(32·퀸즈파크레인저스)을 취재하러 갔다. 12년 전이다. 그때만 해도 박지성보다 교토에 있던 국가대표 공격수 안효연(35)이 더 주목받았다. 당시 박지성에 대해 안효연이 지나가듯 말했다. “지성이는 감독님한테 웨이트 트레이닝을 너무 열심히 한다고 해서 혼나요. 그래도 숨어서 한다니까요.”

 불러주는 대학조차 없어 은퇴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선수. 너무 왜소해 ‘허정무 감독이 바둑 두다 대표팀에 뽑았다’는 말까지 들었던 선수. 그런 박지성을 키워낸 건 그가 남몰래 흘린 땀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히딩크와 함께한 네덜란드행,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의 점프…. 박지성은 설명할 필요도 없는 한국 최고의 축구 스타가 됐다.

 그러나 밑바닥에서 차근차근 올라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있다. 하산은 등산보다 힘들지 않지만 훨씬 위험하다. 누구나 멋진 활강을 꿈꾸지만 자칫하면 추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퀸즈파크레인저스(QPR)가 28일(한국시간) 치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레딩과의 35라운드는 박지성이 멋진 활강과 추락 사이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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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등 여부가 결정되는 절체절명의 순간. 박지성은 교체 명단에 있었지만 끝내 해리 레드냅(66)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0-0으로 경기는 끝났고, QPR은 세 경기나 남겨두고 강등을 확정지었다.

 사실 이번 시즌 박지성이 맨유를 떠나 QPR에 둥지를 튼 것은 ‘안전한 활강’을 위한 포석이었다. 우승권 팀에서 베스트11 주변을 맴도는 선수로 남기보다는 하위권 팀에서 주축 선수로 활약하면서 축구 인생의 대미를 장식하겠다는 승부수였다. ‘에어 아시아’를 모기업으로 하는 구단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타 박지성을 특별 대우했고, 주장 완장까지 채워줬다. 그러나 이번 시즌 박지성의 도전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 채 끝나가고 있다. 올 시즌 기록은 23경기 출장 0골. 박지성이 잉글랜드에 진출한 후 한 골도 못 넣은 건 올해가 처음이다.

 문제는 다음 스텝을 경쾌하게 밟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박지성은 QPR과 내년 6월까지 계약했지만 팀에 남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챔피언십(잉글랜드 2부리그)으로 떨어져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QPR은 주급이 5만 파운드(8600만원)나 되는 박지성을 품을 여력이 없다. 레드냅 감독의 주전 구상에 포함되지 못한 상황에서 박지성이 굳이 2부리그로 갈 이유도 없다.

 박지성의 다음 행선지는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잉글랜드가 아닌 유럽 중소리그의 작지만 강한 팀으로 옮길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박지성이 맨유에 진출하기 전에 뛰었던 네덜란드의 PSV 에인트호번 같은 팀이다.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할 경우 명예를 회복할 기회도 얻을 수 있다. 이런 팀을 고를 경우 박지성은 몸값이 큰 폭으로 떨어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실익을 챙기려면 중동이나 중국 등 머니 게임이 횡행하는 리그로 눈길을 돌려야 한다. 중국 수퍼리그 챔피언 광저우 헝다는 지난해 박지성에게 연봉 820만 유로(119억원)를 제시한 바 있다. 이영표처럼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를 경험한다면 박지성이 축구 행정가로 제2의 축구인생을 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K리그로 돌아와 주기를 바라는 축구팬도 많지만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장지현 SBS ESPN 해설위원은 “어떤 선택이든 좋지만 박지성이 실리보다는 명분을 중시했으면 좋겠다. J리그에서도 박지성은 교토가 2부리그로 떨어졌을 때 팀과 함께하며 더 많은 것을 얻었다. 박찬호처럼 국내 리그에서 명예롭게 선수 생활을 마쳤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고 말했다.

이해준·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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