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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뚝심의 사무라이' 김영배 … DJ맨으로 6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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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1996년 7월 12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국민회의·자민련 만찬회동.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총재,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함께한 김영배 국회부의장(왼쪽부터). [중앙포토]

‘사무라이’로 불리던 원로 정치인 김영배 전 국회부의장이 27일 오후 별세했다. 81세.

 고인은 두 달 전 담도암 3기말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 아왔다. 1932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서울 영등포공고를 나온 고인은 연합신문 기자로 활동하다 79년 제10대 신민당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2~16대 국회를 거치며 초대 노동위원장, 민주당 최고위원, 여당이던 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 등을 지내고 15대 국회에서 국회부의장을 역임했다.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만 6선을 기록했다.

 고인은 야당 중진 김재광(1922~93) 전 국회부의장을 돕다 정계에 입문했지만 70년 신민당 대통령 경선 당시 김대중(1924~2009) 후보를 지지한 후로 줄곧 ‘DJ맨’으로 분류됐다. 고인에게 ‘사무라이’(일본 무사)란 별명이 붙은 건 87년, 신민당 당론인 직선제 개헌에 반대해 내각책임제를 주장한 이철승·이택희 의원을 제명처분할 때다. 김영삼·김대중 고문 두 사람이 이철승·이택희 의원 제명에 합의한 뒤에도 아무도 나서지 않자 고인이 ‘칼’을 들었다. 조직폭력배 개입으로 당사가 쑥대밭이 된 와중에도 제명작업을 끝냈다. 냉혹하다 할 정도의 일처리에다, 짙은 눈썹, 벗겨진 머리 등 외적 이미지를 더해 사람들은 고인을 ‘사무라이’로 부르기 시작했다. 사무라이라는 별명은 스스로도 좋아했다고 한다.

 고인은 2000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국민경선 선관위원장을 맡았을 때 매주 주말 저녁 득표순위를 발표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하지만 대선 과정에서 ‘반 노무현’ 입장을 견지하다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 소속 의원들과 탈당했다. 당시 그는 “노무현은 설렁탕 한 그릇도 안 샀다”며 노 후보를 비난했다. 당 운영과 선거자금 조달을 못한다는 거였다. 고인은 노무현 정권이 출범한 2003년 2월 정계를 떠났다. 선거법 위반 혐의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서다. 이후 일석장학재단 이사장을 지내며 장학사업에 매진해왔다.

 유족은 부인 박창례씨와 아들 종수(재현인텍스 소장)씨, 딸 혜경(주식회사 설악 대표 )씨, 사위 팽헌수(한국마리나산업협회 수석자문위원)씨 등. 빈소는 이대목동병원 . 발인은 30일 오전 6시30분이다. 한국전 참전용사인 고인은 경기도 이천호국원에 안장된다. 02-2650-2743

하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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