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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발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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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0월3일은 개국기념일이다. 단군신화를 따르면 이날 우리 나라는 기원 4300년을 맞는다. 해방 후 정치인들은 『역사 반만년』으로 그것을 「슬로건」화 했다. 아직도 온고파들은『유구한 반만년 역사』를 후렴처럼 사용한다.
역사는 두개의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 하나는 존재의 측면에서 보는 것, 다른 하나는 생성의 측면에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일시적인 성향에만 이끌리는 것은 아니다. 통시적이고 영속적인 성향을 갖는다. 역사는 생성과 존재의 어느 한 측면에서가 아니고, 그것들의 통일에서 체득되고 파악되는 것이다.
『역사 반만년,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는 급진주의자의 반문이다. 우리는 지난 수세기 동안 역사가 단절되는 듯한 아픔을 수없이 겪었다. 숙명론자들은 우리나라의 반도적 성격에 한숨을 쉬기도 한다. 한국은 지리적인 조건 때문에 남달리 고난에 찬 역사를 면면히 이어왔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민족적 열등감」을 과장하려는 식민지적 사관이 우리의 어느 부분을 왜곡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가. 사실 그런 사관을 배격하는 설득력 있는 역사학자들의 등장을 우리는 주의 깊게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려나 역사의 생성성도 우리는 엄숙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건국 후 우리의 역사는 어떻게 운영되어 왔느냐는 문제는 누구나 숙연하게 반성해야 한다. 역사의 단절감은 이른바 식민지 시대에나 있었던 통절함인가.
영국의 역대 수상 중에서 「피트」는 가장 신중하고 냉철한 판단력을 가졌다는 평판을 받았었다. 그는 1792년2월 하원에서의 연설 중에 『「유럽」의 정세를 보건대, 금후 15년간은 평화가 계속될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그 2개월 후 불과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이 일어났으며 10개월 후 영국도 그 속에 휩쓸려 들었다.
정치인들은 과연 「피트」의 오산을 범하는 역사의 오도는 없었는가. 개천절은 역사의 발전을 깊이 생각하는 날로 새롭게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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