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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재단 사무총장-「도로시·M·프로스트」여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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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국은 저의 제2의 고향입니다. 생소한 감정보다는 말할 수 없는 친밀감부터 느끼게 되죠.』
7번째 내한했다는 한·미 재단(AKF) 사무총장 「도로시·M·프로스트」(60) 박사는 한국에 대한 애착심부터 강조한다.
서대문에 자리잡고 있는 한·미 재단이 창설된 것은 1952년 9월, 「아이젠하워」 전 미국대통령이 전쟁에 파괴된 한국의 재건을 위해 이 기구의 설립을 요청한데서 비롯됐던 것.
미 노동성에 근무하다가 13년전 한·미 재단의 설립 동기에 전적으로 공감, 계속 일을 보고 있다는 「프로스트」여사는 전쟁에 시달린 한국 고아들을 돕다보니 60세가 되도록 결혼도 못했다고 핑계(?)를 대면서도 독신생활이 훨씬 즐겁다는 표정을 짓는다. 『불우한 전쟁고아를 돌봐주고 화전민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일등을 주로 해왔죠. 모두가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큰 보람을 느낍니다.』
-하지만 한국전당시 어렸던 고아들이 이제는 제법 성장했고 상황도 많이 변했는데요.
『물론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 한·미 재단의 하는 일은 증대한 전환기에 들어섰습니다. 이제는 물질적인 구호사업 뿐만 아니라 좀더 차원을 높여 한국민 스스로가 자립하려는 노력을 지원해 주고 장기적인 「프로그램」으로 한국개발에 기여하는 방법을 진지하게 연구중입니다.』
-좀더 구체적인 예를 들면?
『교육사업, 농사개량법 지도 등이 그 예입니다. 우리는 미국에 유학하려는 한국인의 영어공부지도나 실력 「테스트」를 해주고 미국서 귀국한 한국인의 직업도 알선해 주고있습니다. 또 4H「클럽」을 통해 새로운 농사법이나 주택건립법·가축사육법 등을 보급도 하죠. 전북지방엔 병원을 세워놓고 의료사업도 전개하고 부산엔 「블린고등기술학교」를 세워 젊은 청년들에게 기술교육도 시키고 있습니다.』 「프로스트」박사의 말은 쉴 새가 없다.
연간 1백20만 달러(약 3억3천만원)의 한·미 재단살림을 도맡고 있는 「프로스트」여사는 무엇보다도 한국의 경제적인 발전상에 더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낀 다면서도 아직 한국말을 배우지 못한 게 수치스럽다고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자기가 살아있는 한 한국과 한국인의 발전에 열과 성울 다하겠다고 다짐하는 여사는 혹심한 남부지방의 가뭄에 몹시 가슴이 아프다면서 곧 지방으로 내려가 한재민들을 돌봐주어야겠다고 서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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