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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 강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지난5월 하순 어느 날 용산경찰서 서장실에 전남무주에서 왔다는 70순의 한 노인이 서장면회를 요청했다.
『웬일이시냐』는 서장에게 노인은 『당신이 머리를 빡빡 깎은 서장이냐』고 되물었다. 서울 아들 집에 왔다가 집을 잊어버렸다는 이 노인은 경찰관 강도사건 때 책임을 느껴 용산경찰서장이 머리를 깎았다는 얘기를 용케 생각해내고 엉뚱하게 고향에 내려갈 차비를 얻으러 왔던 것이다.
사회에 큰 충격을 주어 머리 깊숙이 이렇게 남아있는 김정갑(35) 전 순경, 그는 지난 3월10일 밤10시45분 서대문구합동86 쌀도매상 고봉주씨가 장성으로 보내는 쌀값2백2만원을 권총으로 위협, 빼앗아 도망치다 붙잡혔다.
김정갑씨는 그후 특수강도혐의로 징역5년을 구형 받았으나 지난7월31일 서울형사지법에서 「정신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징역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출감했다.
출감직후 용산경찰서에 나타난 김씨는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산다』는 속담을 인용, 자기사건 때문에 경찰관 봉급이 오르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할 뿐이라고 말하면서 차 한잔 사겠다는 동료들의 청을 물리친 채 훌훌 사라져 다시 소식이 없다는 것이다.
교통사고로 전통조차 받을 수 없이 몸이 불편하였고 집마저 친구에게 사기 당해 아이들이 학교에 못 간다는 김씨의 딱한 사정이 범행 후 알려지자 피해자 고씨를 비롯 월남에 가 있는 맹호용사까지 각계각층에서 16만여원의 온정이 뻗쳤지만 그의 아픈 상처는 조금도 위로치 못했을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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