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플랫폼 버려야 제2 한강의 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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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탭스콧 박사는 24일 IT 콘퍼런스 ‘엔트루월드2013’에서 “초연결 시대엔 협업·공유하는 기업이 성공한다”고 말했다. [사진 LG CNS]

“한국 기업들이 ‘불타는 플랫폼(burning platform)’을 버리지 않으면 ‘제2의 한강의 기적’은 없을 것이다.”

 미래학자 돈 탭스콧(66) 박사의 조언이다. 24일 LG CNS 주최로 열린 정보기술(IT) 콘퍼런스 ‘엔트루월드(Entrue World) 2013’의 기조 연설을 하기 위해 방한한 그를 강연 후 따로 만났다. 그에게 스마트 기기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끼리 연결되는 ‘초연결(hyperconnectivity)’ 시대에 기업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강연에서 ‘한강의 기적’은 한국이 산업화 시대에 맞는 패러다임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초연결 시대에도 이런 전략이 유효한가.

 “한국 문화에는 장점이 많다. 근면·성실하고, 자부심이 강하고, 어른을 존경할 줄 안다. 이런 것들이 새로운 세상에서도 장점이 될 수 있겠지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대표적으로 초연결 시대에는 협업(collaboration)이 필요하다. 그런데 위계질서·상명하복을 강조하는 한국의 문화는 협업과는 배치된다. 예전 모델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이 뒤처질 것 같다는 의미인가.

 “아니다. 다른 측면에서 한국은 초연결 시대에 강점이 있다. 연결의 편의성과 속도다. 광대역 인터넷과 롱텀에볼루션(LTE) 망이 가장 잘 구축돼 있다. 이런 디지털 환경에서 자라난 ‘넷 세대(net generation)’는 뇌 구조가 이전 세대와 완전히 다르다. 인터넷으로 소통하고 인터넷에서 시간을 보낸 아이들은 초연결 시대, 개방화된 사회에 훨씬 적합한 인재들이다. 이런 인재들이 사회의 전면에 나서면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

 -기업끼리도 협업이 가능할까.

 “한국의 대기업들은 경쟁을 통해 성장해 왔다. 하지만 이것 역시 산업화 시대의 패러다임에서나 통하는 얘기다. 바뀌어야 한다. 경쟁자끼리도 협업해야 한다. 한국 대기업들은 자기 것을 지키려고만 한다. 수직적 통합에만 익숙하다. 그러나 인터넷 세상에선 모든 것들이 연결돼 있고 개방돼 있다. 굳이 각자가 똑같은 걸 하겠다고 돈을 쓸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설명해 달라.

 “제약산업을 보자. 제약회사들은 지금 가만히 있으면 특허 만료와 복제약 때문에 해마다 매출의 4분의 1이 사라지는 상황이다. 이대로 가면 망한다. 이들은 불타는 플랫폼을 버리기로 했다. 제약업계는 특허와 소유권을 강조하던 기존 방식 대신 임상시험 결과를 공유하기로 했다. 북해에 설치된 원유 채굴 플랫폼에 불이 난 적이 있다. 많은 인명이 희생됐지만 소수의 생존자는 살기 위해 차가운 바다로 뛰어내린 사람들 가운데서 나왔다. 불타는 플랫폼은 인터넷이 몰고 온 개방·투명의 시대를 맞아 위기에 처한 기업의 모습이다. 이걸 버린다는 건 기업이 변화와 혁신에 나선다는 의미다. 가만히 있다가 확실히 죽을 운명이라면 생존 가능성이 낮다고 해도 뛰어내릴 수밖에 없다.”

 -특허를 공유해서 어떻게 기업이 수익을 낼 수 있을까.

 “유튜브에 가면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를 공짜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싸이가 피해를 봤을까. 아니다. 오히려 뮤직비디오를 공유했기 때문에 싸이가 성공했다. 80년대 컴퓨터 회사들이 그랬다. 다들 운영체제(OS) 개발에 돈을 쏟아 부었다. 공짜 OS인 리눅스가 나왔을 땐 ‘공산주의’라고까지 비난했다. 그렇지만 리눅스를 공유하면서 개별 기업이 OS 개발에 쏟는 비용을 천문학적으로 줄였다. 한국 대기업들도 불타는 플랫폼을 버리고 협업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고란 기자

돈 탭스콧 디지털 비즈니스 전략가. 앨빈 토플러 이후 가장 주목받는 차세대 미래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패러다임 시프트』 『위키노믹스』 등 인기 경영서적을 썼다. 2011년 유럽의 권위 있는 잡지 ‘싱커스 50’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사상가 50인’ 중 하나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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