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장치 추가해야 하는데 기다리라고만 하니 답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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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계성초등학교 후문. 굳게 닫힌 문 사이로 학생들의 모습이 보인다. 지난해 10월 공사 차량의 통행을 위해 열어 둔 이 문으로 괴한이 침입, 학생들에게 흉기를 휘두른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학교 측은 안전시스템을 대폭 강화했다

지난해 10월 서울 반포동 계성초등학교에서 이 학교 학생 6명이 괴한이 휘두른 야전삽에 맞아 크게 다치는 사건이 벌어졌다.범인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10대 고교 중퇴생이었다. 학교, 특히 명문 사립학교라는 특수한 공간적 배경과 수업시간 중이었다는 시간적 배경이 맞물리면서 사회에 큰 파장을 던졌다. 교육 당국은 부랴부랴 CCTV를 확충하고 학교의 출입 요건을 강화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로부터 6개월. 이제 학교는 안전해졌을까. 강남의 주요 초등학교를 찾아가 봤다.

우선 사건이 벌어졌던 계성초등학교를 찾았다.

 17일 오후 2시쯤 학교 정문 앞에는 학부모 3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자녀 하교 시간에 맞춰 마중나온 것이다. 학교로 들어가는 정문과 후문은 모두 굳게 잠겨 있었다. 정문 옆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만 열려 있었고, 이곳은 학교 보안관이 지키고 있었다. 학부모라도 사전에 발급받은 방문증 없이는 들어갈 수 없었다. 흡사 군대 앞 초소 같은 분위기였다.

 정문이 열리자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다들 부모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갔다. 잠시 뒤 스쿨버스가 나왔다. 홀로 가거나 또래끼리 모여 집에 가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실 계성초는 안전한 지역에 위치해 있다. 반포주공아파트로 둘러싸여 있고, 이 밖에 다른 시설이라곤 인근 외국인 학교와 신반포중학교, 교회와 성당 정도다.

 하지만 지난해 겪은 일의 후유증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했다. 정문에서 만난 30대 주부 A씨는 “지난해 사건 이후 불안해 늘 데리러 온다”고 말했다. 계성초교 관계자는 언론 접촉 자체를 거부했다. 학교 관계자는 “무슨 내용이든 학교 이름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싫다”고 말했다.

 계성초는 지난해 정신질환자의 난동 사건 이후 보안 시스템을 대폭 강화했다. 기존 CCTV 46대를 61대로 늘려 사각지대를 거의 없앴다. 또 학

누구나 출입이 가능한 대치초등학교.

교 담장과 교문 등 36곳에는 적외선 감지 시스템을 구축해 이상한 움직임을 감지하면 종합상황실에 경보가 울리도록 했다. 학교 출입문에는 지문인식 장치를 달아 지문이나 학생증으로 확인을 해야만 출입이 가능하도록 했다. 종합상황실에는 학교와 계약한 전문 보안업체 인력 2명이 상주하며 CCTV를 모니터링한다.

 국방부보다 더 철벽 방어를 하는 셈이다. 학교 측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보안전문가들은 “이 정도 수준이면 수억원대가 들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이렇게 예산이 충분치 않은 다른 국·공립 초등학교들은 어떨까.

 같은 날 오후 4시 송파구의 한 초등학교 정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하지만 기자가 운동장에 들어서자마자 학교 보안관이 경비실에서 나와 “어떻게 왔느냐”며 불러세웠다. 경비실에는 CCTV 10대의 화면을 볼 수 있는 모니터와 비상벨이 있었다.

 보안관 B씨는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CCTV 대부분이 오래돼 화질이 선명하지 않다”며 “모니터 속 상황을 알아보기 쉽지 않은 데다 조금만 보고 있어도 눈이 아프다”고 말했다. 또 “특히 저녁 때는 인근 중학생들이 왼쪽 담장을 넘어 들어오기도 하는데 이쪽을 비추는 CCTV가 유달리 흐려 걱정된다”며 “담을 더 올리고 위에 보안장치도 추가했으면 좋겠는데 예산 때문에 기다리라고만 하니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적외선 감지 시스템이나 지문인식 장치·CCTV 전문 인력 같은 인프라는 학교 재정이 탄탄한 사립학교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였던 셈이다.

 이 학교뿐 아니라 다른 많은 학교도 학교 담장이 외부인 침입으로부터 많이 취약해 보였다.

 대치동에 있는 대치초는 학교 건물 서쪽으로는 누구나 출입이 가능했다. 1.2m 높이의 관목이 담장 대신 줄지어 심어져 있었는데 문 없는 출입로가 나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을 통해 들어가 보니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는 운동장까지는 20m에 불과했다. 걸어도 1~2분이 채 걸리지 않았고, 뛰면 10초 만에 아이들과 맞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개포초는 학교공원화 사업으로 허물었던 담을 사건 이후 다시 세웠다. 그러나 높이 1.2m의 철제 담장은 쉽게 넘을 수 있었다.

 최근 서울연구원이 사립초를 제외한 서울 관내 556개 국·공립 초교 학생 안전담당 교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서울 초교 대부분이 CCTV 운영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 40.1%가 “전담인력 부족으로 CCTV 모니터링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답했다. 강남의 한 초교 교사는 “CCTV를 확충해도 모든 것을 막을 수는 없다”며 “학교 대부분 CCTV를 모니터링하는 전담요원이 없어 감시에 한계가 있다”고 하소연했다.

 각 초교에서 누가 CCTV를 모니터링하는지 살펴봤더니 학교 보안관(34.2%)이 가장 많았다. 그러나 정작 학교 보안관을 상대로 주요 업무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CCTV 모니터링 확인이라고 답한 비율은 0.6%에 불과했다. 할 사람이 없어 맡기기는 했지만 정작 맡은 사람은 그 일을 자기 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조사에서 서울 초교의 평균 CCTV 수는 10대였다. 하지만 CCTV 모니터 수는 3대였다. 연구원은 “CCTV와 CCTV 모니터 수가 맞아야 제대로 모니터링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또 낮은 화질·다분할로 인한 작은 화면도 CCTV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한편 초등학교 안전 문제는 교육 당국뿐 아니라 학교 인근 주민도 어느 정도 책임감을 공유해야 한다는 게 학교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익명을 요구한 강남의 한 초등학교 교감은 “학교 출입문을 폐쇄하니 운동장을 개방하라는 주민 민원이 빗발쳤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후문을 걸어잠그면 돌아가기 귀찮다며 정문을 개방하라고 할 정도로 재학생 안전보다 주민 편의를 챙기려 든다”며 “아무리 학교가 보안을 잘해도 (현재 상황에서는) 뚫릴 수 있다”고 말했다.

글=유성운·심영주·조한대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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