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선 넘은 「자유」|마수서 벗어난 북의 남녀 회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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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폭우 속 광복절에>
광복절인 15일 하오3시쯤 휴전선부근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회산리 북괴 협동농장에서 일하던 정신화(34·본적 황해북도 송화군 장양면 주연리)씨와 같은 마을 박명화(27·본적 황해도 김제군 백여면 우암리) 여인이 폭우와 야음을 틈타 사선을 뚫고 자유대한으로 넘어왔다.

<여인남동생은 익사>
이두사람은 지난12일 밤 10시쯤 박 여인의 남동생 종화(25)씨와 함께 3명이 미리 준비해둔 구명대를 메고 임진강에 몸을 던져 월남을 기도했으나 종화씨는 도중에서 탁류에 휩쓸려 낙오가 되고 두 사람만이 탈출에 성공, 정씨는 이날하오 3시55분쯤 육군전방 모 사단초소에, 박 여인은 하오8시쯤 각각 귀순했다.
16일 밤 육군 방첩대에서 보호를 받고있는 이들은 『8·15를 남한에서 맞으려 했는데 늦은 것이 안타깝다』고 말하면서 북괴의 선전과는 너무나 다른 남한의 발전상을 보고 신기한 듯 창 밖으로 여러 번 눈길을 돌렸다.

<자유가 그리워>
이들은 『공산학정과 강제노동에 못 이겨 월남할 것을 결심했다』고 말하고 『대부분의 이북동포들이 자유를 그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래 전부터 계획>
정씨는 『고향에서 송화중학을 중퇴하고 괴뢰군에 6년이나 복무하였으나 고향에 보내주지 않고 최전방 협동농장으로 배치되어 하루 12시간씩 강제노동을 당해왔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월남할 기회를 노려왔다』고 말하고 박 여인은 『지주의 딸이라는 신분을 숨기고 노동당이장 나상배씨와 결혼한 것이 탄로되어 심한 감시와 학대를 받아오다가 정씨와 함께 월남할 것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자유대한에서 하룻밤을 지낸 정씨와 박 여인은 『이북에선 보수가 너무 낮기 때문에 한 달에 고기한번 사먹기 힘들다』고 말하고 『남한에선 부산이나 제주도까지 마음대로 갈 수 있느냐』고 묻기까지 했다.

<북의 가족이 걱정>
이들은 또한 서울거리가 화려하며 차가 많은 것을 보고 놀라 와하면서 이렇게 자유의 품에 안기고 보니 이북에 남아있는 가족들 생각이 더 간절하다면서 기쁨에 겨운 눈물을 흘렸다. 한편 정씨의 가족으로는 아버지와 동생이 북괴신청방송국 양수 관리장에서 함께 일하고있으며 처(30)와 3세 된 딸이 있다. 박 여인은 고향에 남편과 3세 및 7세 된 두 딸을 남겨두고 월남했으며 8·15직후 월남한 큰오빠 박영하(46세가량)씨, 언니 박춘화(48세가량)씨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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