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금감원이 키운 보험 블랙컨슈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0면

손해용
경제부문 기자

요즘 보험사들은 속된 말로 ‘죽을 맛’이다. 금융당국에서 내려온 민원 감축 지시 때문이다. 하지만 민원은 줄지 않고 되레 더 늘고 있다. 아이러니다.

 사연은 이렇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취임 직후 “금감원에 접수되는 민원의 절반 이상이 보험 부문”이라며 “민원 건수를 줄이기 위해 소비자와 접점에 있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필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금감원은 보험사들에 내년까지 민원 수를 현재의 절반으로 줄이라는 목표를 통보했다.

 물론 최 원장의 말은 소비자 보호를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 전해진 후 기뻐한 이는 따로 있었다. 바로 악성 민원을 상습적으로 제기하는 ‘블랙컨슈머’들이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한 지역 자동차검사정비사업조합은 업주들에게 공문을 보내 조직적으로 민원을 제기할 것을 부추겼다. 한 보험 가입자는 최근 보험사에 전화를 걸어 “보험료가 너무 비싸다”며 지금까지 낸 보험료를 모두 돌려달라는 민원을 넣었다. 회사 측에서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자 그는 “금감원에 항의하겠다. 제대로 당해보라”며 폭언을 쏟아냈다.

 금감원의 특별지시가 떨어진 만큼 민원을 제기하면 보험사가 압박감을 느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실제 한 보험사는 특별한 이유 없이 이달 민원이 전년보다 50%가량 증가했다. 결국 고객의 민원을 줄여주겠다는 최 원장의 의도가 역풍을 불러일으킨 셈이다. 블랙컨슈머들의 과다 민원 제기에 따른 보험금 누수는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지고 보면 보험사의 고질적인 민원은 구조적인 문제에서 찾아야 한다. 고액의 판매수수료만 챙긴 뒤 판매한 보험에 대한 책임은 회피한 채 다른 보험사로 자리를 옮기는 이른바 ‘먹튀 설계사’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민원 개수를 줄여라”는 쌍팔년도식 금융감독으로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의구심이 든다.

손해용 경제부문 기자